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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美軍·군사정권이 이끈 서울 동부권 개발
2017/08/13  07:53:02  아시아경제
전쟁 시달리던 요충지 광장동, 미군 위락단지로
군부정권시절 비밀리에 워커힐 건설추진
근처 아파트, 당시 최고분양가 기록



1963년 개관당시 워커힐호텔 수영장 모습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권력의 실세로 꼽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1961년 미군을 위한 대규모 위락시설을 기획하면서 지금의 광장동 한 켠을 점찍은 배경은 분명치 않다.

당시 미군측 요청에 따라 서울 인근에 장병 위락시설이 필요했고 김 전 총리를 필두로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헬기를 타고 서울 곳곳을 살폈다. 결정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한 달 가량 서울 전역을 살피다 아차산 기슭에 있는 한 별장에서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총리, 송요찬 내각수반이 휴식을 취하다 점찍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평소 낚시를 즐기다 쉬어 이박사 별장으로 불리던 곳으로 지금의 워커힐 호텔 자리다.

이와 관련 19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서울 일원을 누비다시피 돌아다녔고 공중조사도 몇 차례 했지만 정작 위치선정은 희한하게 이뤄졌다"고 훗날 책에 적었다. 지금도 쓰고 있는 워커힐이란 이름은 미군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주한 유엔지상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월턴 워커에서 따왔다. 그는 한국전에서도 적잖은 공을 세웠으나 1950년 12월 시찰 도중 사망했다.

서울에서도 손에 꼽히는 한강 절경이 펼쳐지는 광장동 일대는 과거부터 넓은 나루터가 있었다. 이곳 지명도 광주(廣州)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루터, 혹은 강폭이 넓은 나루터라는 뜻에서 따왔다. 지금도 지하철 광나루역이 있다. 광나루가 한자로 광진인데 일제 때 인근 장의리와 합쳐지면서 광장리, 해방 후 서울에 편입되면서 광장동이란 지금 이름을 갖게 됐다. 아차산 일대에 오르면 주변 산세와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는 데서 알 수 있듯 요충지로 꼽히던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치른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도 그래서다.

군부정권 시대 워커힐 건설은 김 전 총리가 수장으로 있던 중앙정보부가 주도했다. 비밀리에 진행한 탓에 초기엔 서울 시민 사이에서는 대규모 공사도 풍문으로만 떠돌았다. 박 전 대통령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현장을 찾았고 1970년대 청와대 앞 안가가 생길 때까지 휴식을 취하러 자주 들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에 충성했던 서울시장이 이전까지 허허벌판으로 있던 광장동 일대를 포함한 서울 동부권역의 길을 내고 개발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크게 작용했을 테다. 뚝섬ㆍ화양ㆍ중곡지구 등 각각 수백만㎡에 달하는 부지의 구획정리사업은 1960년대 중후반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손 교수는 "성동구에서 광나루에 이르는 일대에서 건국대ㆍ세종대ㆍ어린이공원ㆍ워커힐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형이 구획정리사업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워커힐 호텔 바로 남쪽 터에 들어선 같은 이름의 아파트는 한때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이름을 떨쳤다. 1978년 2월 1차 분양에서 3.3㎡당 62만원, 이듬해 6월 2차분양 때는 3.3㎡당 80만원으로 매겨 당시로서는 최고가 기록을 썼다.

비슷한 시기 특혜분양으로 물의를 일으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3.3㎡당 44만5000원에 분양되던 때였다. 최근 최고 분양가 기록을 새로 쓴 아파트의 가격이 3.3㎡당 4750만원이니 40여년간 60~70배 가량 올랐다. 비슷한 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7배 정도 올랐다. 아파트 투자에 열을 올리는 건 경험으로 익힌 자연스러운 행위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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