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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신고전주의 거장 ‘앵그르’ 살짝 과장은 했어도…우아한 그녀의 누드
2018/10/22  09:39:47  매경ECONOMY
2009년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된 크리스티 파리 경매 프리뷰 기간 동안 3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경매 프리뷰 전시에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모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컬렉터의 뜨거운 관심 속에 고전 거장 그림부터 중국 도자기, 실버 그릇에 이르기까지 700여점에 달하는 소장품이 약 3억7400만유로(약 4900억원)라는 경이로운 낙찰가 총액 기록을 세웠다. 한 개인의 소장품 경매로서는 최고 기록이었다. 올해 5월, 크리스티 뉴욕에서 열린 록펠러 소장품 경매가 1조원에 달하는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거의 10년 가까이 싱글 오너 컬렉션 경매 기록으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누구의 소장품이었기에 이런 역사적인 기록을 만든 것일까.

바로 파리 패션계의 입지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1936~2008년)이다. 기대를 뛰어넘는 대기록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안목과 세련된 취향 덕이 컸다. 이 경매에서 주목받은 많은 미술품 가운데 특히 눈에 띈 한 점이 있었다. ‘라 루에 백작 부인의 초상화(Portrait de la comtesse de La Rue, 1804년)’라는 제목의 작품. 한 젊은 여인을 그린, 작지만 아름다운 초상화였다. 한 시대 패션을 풍미하고 유행을 선도한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인가. 프랑스 신고전주의 대표 화가로 칭송받는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년)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앵그르는 아버지의 전적인 후원으로 일찌감치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탁월한 실력 덕분에 당시 파리 미술계를 평정한 신고전주의 화풍의 대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년)의 수제자가 됐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는 국비장학생으로 발탁돼 로마에 체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특히 라파엘로를 동경해온 그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로마에서 14년을 체류하고 이후 피렌체로 옮겨 4년을 더 머물면서 르네상스 미술을 섭렵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중 몇 점이 이 시기에 그려졌다. 그중 하나가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The Valpincon Bather, 1808년)’이다.

터번을 두른 채 다소곳이 뒤돌아 앉아 있는 하렘 여인을 묘사한 이 작품은 앵그르의 출중한 데생 실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된 이불과 침대 커버 천의 촉감과 광택, 그리고 벨벳 커튼의 느낌을 보라. 그녀의 뽀얀 살결과 하얀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는 햇살의 묘사는 또 어떤가. 원래 이 작품은 ‘목욕하는 여인’ 또는 ‘앉아 있는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발팽송이라는 컬렉터가 작품을 구매한 후 자기 이름을 제목에 삽입하면서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으로 자리 잡게 됐다. 얼마나 이 그림을 아꼈으면 제목에 자기 이름을 끼워 넣었겠나.

로마 체류 시기에 그린 또 다른 대표작으로 ‘대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 1814년)’를 꼽을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터번을 두른 이 여인 역시 하렘 여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몸 전체가 정면을 응시하는 대부분의 서양 전통 누드화와 달리 이 여인은 등을 돌리고 누운 채 얼굴만 관객을 향하고 있다. 물론 등을 돌린 누드 포즈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 조각을 비롯, 루벤스와 벨라스케스 등 바로크의 거장들도 같은 포즈의 누드화를 다룬 바 있다. 특히 벨라스케스가 그린 ‘거울을 보는 비너스’로 널리 알려진 ‘로크비의 비너스(Rokeby Venus, 1647~1651년)’가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앵그르의 이 19세기 버전의 등 돌린 비너스는 당시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하는 하렘 여인이라는 점 외에도 여느 서양 누드화에 등장하는 비너스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왜곡된 인체 묘사다. 유심히 그녀의 몸을 보고 있노라면, 여인의 허리 길이가 다소 과장되게 늘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의도적으로 인체 비율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이런 비례의 척추 길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꼬고 있는 왼쪽 다리 역시 너무 길고, 심지어 엉덩이에 붙어 있지도 않다.

데생력이 뛰어난 앵그르가 실제와 다르게 여인의 몸을 묘사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스 조각에서나 엿볼 수 있는 우아미와 이상미를 회화에 재현 내지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녀는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그림은 전통적인 명암법마저 과감하게 무시한 채 정교한 선을 이용해 이국적인 사물들과 터번이나 커튼 같은 텍스타일의 묘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우리 눈에는 상당히 전통을 따르는 듯 보이는 이 누드화가 사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통을 깨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당대에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법이다. 1819년 앵그르가 이 작품을 파리 살롱에 전시했을 때 거의 모든 비평가가 일제히 해괴망측하게 인체를 뒤틀고 왜곡한 엉터리 그림이라고 비난과 맹공격을 퍼부었다. 현실 형태를 변형해서라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싶었던 앵그르의 예술관이 당시에는 수용되지 못했던 셈이다. 그래도 야심을 가졌던 종교화와 대형 역사화 장르에서 명성이 자자해 당대에도 예술가로서 그의 삶은 꽤 성공적이었다.

신고전주의 대가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험 정신은 계속 이어졌다. 팔십이 넘은 말년에 완성한 대표작, ‘터키탕(Le Bain turc, 1852~1859년, 1862년 수정 완성)’이 좋은 예다.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관능적 누드화라는 비난을 비켜 가기 위한 소심한 장치로서 이국적인 오리엔탈리즘(제목과 터번 두른 여인들)을 입히기는 했다. 사회적 비판을 피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여성 누드를 한 화면에 합성해 오롯이 상상에 의해 완성한 이 단체 누드화는 동그란 열쇠 구멍을 통해 목욕탕을 엿보는 듯 관음적인 시선과 관능적인 여성들의 포즈로 인해 그가 죽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야말로 피카소, 마티스 등 후대 많은 화가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그의 마지막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앵그르는 자신이 바라던 바와는 반대 이유 때문에 추앙받는다. 평생 그토록 혐오했던 낭만주의적 상상력이 깃들어 있기에 그의 그림은 지루한 신고전주의를 탈피할 수 있었다. 또한 색채는 회화에 부수적인 요소일 뿐, 자신은 선을 중시한다고 했으나 정작 마티스는 그를 ‘순수색채를 다룬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화가’라며 그의 색채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대형 역사화를 통해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의 진가는 초상화에서 발현됐다. 시간 낭비라며 그리기 싫어했던 소소한 초상화가 오늘날에는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앵그르의 삶이 그러하듯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9호 (2018.10.17~10.23일자)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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