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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상품 내놨더니 베끼기 된다니…핀테크·중소 금융사 '속앓이'
2019/07/12  06:03:53  이데일리
김광수(오른쪽)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농협금융 본사에서 ‘온·오프 여행자 보험’ 출시를 기념해 1호 가입을 하고 있다. (사진=NH농협손해보험)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어렵게 개발한 상품과 서비스를 대기업이 그대로 베낄 수 있다면 누가 시간과 돈을 들여 혁신을 하겠습니까.”한 중소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금융 서비스) 업체 대표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9일 참석한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100일을 맞아 열린 행사였다. 규제 샌드박스란 기존 금융 규제를 최장 4년간 적용하지 않는 특례제도다. 민간 사업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마음껏 만들어보라는 취지다.

그런데 기껏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놨더니 대기업의 아이디어 탈취를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 업체들의 불만이다.

◇보험 특허 신청했지만…금융당국 ‘부정적’NH농협손해보험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아 최근 ‘온·오프(On-Off) 해외 여행자 보험’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내놨다.

이 보험은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한 번 가입한 후 필요치 않을 땐 보험의 보장 기능을 꺼놓았다가 필요할 때만 다시 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보험에 재가입하더라도 반드시 계약자에게 상품 내용을 설명하고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소비자가 해외여행 갈 때마다 공항 내 보험사 창구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앴다. 이런 편리함 때문에 온·오프 여행자 보험은 지난달 12일 출시 이후 한 달 만에 1만5000건이 넘게 팔리는 ‘대박’을 쳤다.

농협손해보험은 손해보험협회에 온·오프 여행자 보험의 ‘배타적 사용권’을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도 냈다. 배타적 사용권은 보험 신상품을 만든 회사에 최장 1년간 독점 판매권을 인정해 주는 제도다. 개발 이익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만약 다른 회사가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면 협회가 판매 중지 명령이나 벌금 부과 등 제재를 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최근 신청을 다시 철회했다. 금융위원회의 입장을 지켜보고 결정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샌드박스 제도의 목적이 규제 완화를 통해 기존에 없는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여 시장의 경쟁을 강화하자는 데 있는 만큼 특정 업체에 독점권을 주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 제도의 근거법인 금융혁신지원 특별법도 규제 특례 기간 중 경쟁에서 살아남아 정식으로 인허가를 받은 사업자가 ‘배타적 운영권’(최장 2년)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온·오프 보험처럼 샌드박스를 적용 중인 서비스의 경우 다른 사업자가 “나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테니 규제를 풀어달라”고 신청하면 별도 심사 없이 바로 승인하겠다는 것이 금융위 방침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샌드박스 정책의 성과를 내려면 더 많은 소비자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업계 “대기업의 ‘아이디어 탈취’ 걱정…보호 필요해”하지만 정작 규제 특례를 주로 신청하는 핀테크 업체나 중소 금융사의 걱정은 크다. 자본력과 판매 채널을 앞세운 대기업이 아이디어 베끼기에 나서면 공들여 개발한 상품과 서비스가 시장에 자리 잡기도 전에 밀려날 수 있어서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온·오프 여행자 보험은 최근 나온 보험 상품 중 가장 괜찮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우리가 보기에도 잘 만든 상품”이라며 “같은 상품을 팔 수 있다면 당장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손해보험은 보유 자산 기준 국내 손해보험사 중 9위에 불과한데, 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대형사가 똑같은 상품을 출시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경우 온·오프 여행자 보험과 비슷한 방식의 ‘스위치 보험’을 이미 판매 중이다. 금융위의 규제 특례를 적용받은 핀테크 업체인 ‘레이니스트’와 손잡고서다. 스위치 보험은 레이니스트의 자회사인 보험 판매 대리점(GA)이 직접 삼성화재 보험에 계약자로 가입하고 개별 소비자(피보험자)의 위험을 보장하는 구조로, 소비자가 보험 계약자인 온·오프 보험과는 약간 다르다.

금융당국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았다면 일정 부분 독점적인 지위를 인정해 돈을 벌 수 있게 해야 앞으로도 창업이나 혁신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샌드박스 적용 대상을 심사하는 금융위 산하 혁신금융심사위원회의 한 민간 전문가도 “중소 핀테크 업체가 이미 출시한 서비스를 대기업이 그대로 베낀다면 혁신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경우 규제 특례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의 샌드박스 제도 담당자는 “혁신금융심사위 논의 등을 거쳐 이 문제에 관한 큰 원칙과 제도 운영 방향을 정하고 업체들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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