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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에 '성별·인종·연령' 경계를 없앤 'M.A.C'
2019/09/11  06:32:11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1980년대만 해도 남성들이 화장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당연지사 남성을 위한 화장품 브랜드도 없었고, 화장품을 여성과 함께 사용한다는 자체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코스메틱 업계에서 성별은 물론 인종이나 연령의 경계조차 사라졌다. 이 경계를 허문 중심에는 캐나다 출신의 미국 코스메틱 브랜드 '맥(M.A.C)'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화장품 브랜드로 잘 알려진 맥은 캐나다의 한 미용실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살롱을 운영했던 프랭크 안젤로(Frank Angelo)가 사진작가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프랭크 토스칸(Frank Toskan)과 사랑에 빠진 게 맥의 시작이다. 당시에는 색조 화장품의 품질이 좋지 않았고, 블러셔는 분홍색, 립스틱은 빨간색 등 색상의 종류도 많지 않았다. 이에 안젤로는 자신의 연인인 토스칸을 위해 '사진에 잘 나오는 화장품'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토스칸 주변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모델, 사진작가 등에게 판매했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안젤로가 만든 화장품으로 화장한 모델들이 잡지 표지를 장식하면서 1984년 3월, 토론토 허드슨 베이 백화점에 편집숍을 열었다. 대부분 화장품 브랜드들은 주로 스킨케어제품에 집중했지만 맥은 색조화장품에 집중했다. 맥이란 사명도 이를 반영해 '메이크업 아트 화장품(Makeup Art Cosmetics)'이다.


1985년 '맥'이란 이름으로 공식 출시된 제품은 현재 국내에서 '총알 립스틱'으로 불리는 립스틱 제품이다. 당시 출시된 립스틱 이름은 '플라밍고'로, '눈으로 보는 색과 입술의 발색이 같은 최초의 립스틱'이 탄생했다. 참고로 1980년대에는 화장품 기술력이 부족해 눈으로 보는 색과 입술에 발색한 색이 달랐다고 한다. 이후로도 다양한 색상의 립스틱과 페이스 메이크업 제품들을 내놓으면서 '색조화장품'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현재는 전 세계 90개국에서 500여 곳 매장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모든 인종, 모든 성별, 모든 연령(All Races, All Sexes, All Ages)'

모든 인종과 성별, 연령을 막론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맥의 모토였다. 지금도 맥이 성공한 가장 큰 비결로 손꼽힌다. 유색인종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색상의 메이크업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색조화장품'의 권위자로 입지를 다졌다. 당시 유색인종들은 자신들의 피부색에 맞는 화장품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백인들을 위한 색조화장품만 존재했다. 실제로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유색인종이 많은 나라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또 편집숍을 제외하고 첫 공식 매장을 미국 뉴욕의 게이 스트리트에 열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에이즈(AIDS, 후천면역결핍 증후군)가 발병된 곳이자 게이바가 몰려있는 지역이다. 맥은 "어떤 성별이든 우리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고 광고했고, 게이 스트리트 내의 게이바나 클럽 등에서 일하던 드랙퀸(여장남자)들이나 메이크업으로 자신을 표현하던 많은 이들을 위한 첫 브랜드나 다름없었다.


맥의 모토는 맥의 운영방식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1994년부터는 HIV(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에이즈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자 맥 산하에 'HIV/AIDS' 조직을 만들고 에이즈 펀드를 신설했다. 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비바 글램(VIVA GLAM, 맥에서 판매 중인 립스틱 제품명) 캠페인을 통해 HIV/AIDS 퇴치를 위한 기금으로 3억4000만 달러(약 4053억원)가 모였다. 레이디 가가, 파멜라 앤더슨, 니키 미나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곳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파격적인 맥의 운영방식이 현재 코스메틱 업계에서 인종이나 성별 등의 경계를 허물도록 작용했다.

프로페셔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추천하는 화장품

맥은 코스메틱 업계 최초로 매장 직원에 단순히 판매 직원이 아닌 전문적인 메이크업 교육과 트레이닝을 받은 전문 아티스트를 투입했다. 정확히 말하면 매장 직원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해 모든 직원을 전문가로 만들었다.


고객이 자신에게 맞든, 맞지 않든 자체적으로 테스트를 해 단순히 제품을 구매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직원들이 직접 컨설팅을 해주는 지금의 코스메틱업계 운영 방식의 원조인 셈이다. 또 이 운영 방식은 맥이 패션업계 런웨이 백스테이지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된 발판이 됐다.


맥 소속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프라발 구릉(Prabel Grung)에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까지 아우르는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지금까지 전 세계 200개 이상의 패션 위크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아주 꾸준히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마돈나'의 립스틱 , 에스티로더의 품으로

맥의 대중화를 이끈 장본인은 창업주인 프랭크 연인이 아닌 마돈나다. 팝의 여왕이라 불리는 마돈나는 파격적인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데뷔 초부터 이목을 끌었고, 마찬가지로 파격적인 운영방식을 선보였던 맥과도 잘 맞았다. 맥은 마돈나를 위해 무대에 서 있는 내내 지워지지 않는 립스틱을 만들었다. 지금도 맥의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인텐스 매트 레드 립스틱 라인의 '러시안 레드'가 마돈나의 립스틱이다. 해외 투어 당시 맥의 티셔츠를 입고, 러시안 레드를 바른 마돈나의 모습이 사진으로 찍히면서 맥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제품의 다양성, 품질까지 겸비한 맥의 인기는 고공행진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로 꼽히는 로라 메르시에의 창업주가 '맥 매장에 바글거렸던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했다고 말할 정도로 맥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때 맥은 코스메틱업계 글로벌 톱2 에스티로더그룹의 눈에 들었다. 에스티로더를 비롯해 크리니크, 랩 시리즈, 오리진스 등을 보유하고 있던 에스티로더그룹은 1994년 맥의 지분 절반가량을 인수했고, 1997년 창업주 안젤로의 사망으로 1998년에는 나머지 지분까지 인수했다. 인수금액은 공식 발표한 바 없으나 현재 맥의 기업가치가 수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맥은 에스티로더의 '효자 브랜드'로 거듭났다. 게다가 신흥시장에 진출할 때는 맥을 이용해 소비자들을 확보한 뒤 크리니크, 아베다 등 산하의 브랜드를 뒤이어 진출시키는 전략을 쓴다고 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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