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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무너진 성수대교…우리는 '사고공화국'서 벗어났는가
2019/10/21  16:42:24  이데일리
-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대참사
- 21일 합동위령제 열려…"비극 되풀이 안돼"
- 건설사 부실시공·서울시 관리소홀 지적
- 잇단 경고음 무시한 결과 참사로 이어져

1994년 붕괴 이후 새롭게 건설된 성수대교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1994년 어느 날 아침, 열네살 소녀 은희는 TV 뉴스를 보고 몸이 굳는다. 한강 다리가 칼로 똑 자른 것처럼 끊어져 있는 장면을 차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매일 다리를 건너 통학하는 은희의 큰언니는 다행히 무사했다. 하지만 친언니처럼 따랐던 동네 학원 선생님이 그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은희는 오열한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50분쯤 서울 압구정동과 성수동을 잇는 성수대교 중간부가 무너져 내렸다.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일부가 붕괴한 사건으로, 출퇴근 시간에 다리를 건너던 직장인과 학생 등 32명이 숨졌다. 성동구 무학여중·고에서만 사망자 9명이 나왔다.

지난 8월 개봉해 독립영화로서는 경이로운 관객수 12만명을 기록한 ‘벌새(감독 김보라)’는 평범한 여자 중학생의 눈을 통해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바라본다. 십대 소녀 성장 드라마의 주요 사건으로 성수대교를 다루면서 대형 참사가 개인의 삶, 나아가 사회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기는지 절절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수대교 붕괴 25주년…유가족 위령제 올해도 열려
영화 ‘벌새’ 한 장면(사진=엣나인필름)
“엄마는 여전히 기억하고 아직도 사랑해.”낙엽이 물들기 시작한 10월 서울숲을 가로 지르면 강변북로 성수IC 나들목 부근에 위령탑이 하나 나온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1997년 성수대교 북단에 설치된 위령탑이다. 부근엔 ‘엄마가 여전히 기억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21일 오전 11시 성수대교 붕괴 25주기를 맞아 위령탑 앞에서 희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한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유가족들은 “다시는 성수대교 붕괴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불감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40여명의 유가족은 희생자들을 위해 향을 올리고 헌화했다.

성수대교 붕괴는 수 차례 이상 징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제때 하지 않은 인재(人災) 중의 인재였다. 당시 사고 현장을 묘사한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물 위로 드러난 사고 교각상판이 상당히 부서졌는데도 불구하고 철근이 일부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며 부실공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울시도 구조적 결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건설사 측은 서울시가 늘어난 교통량을 감안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아 사고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건설을 맡은 동아건설 측은 “지난 1977년 지을 당시에는 최대 통과 하중이 33t으로 설계됐으나 최근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해 접속부분의 핀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절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당시 성수대교의 교통량은 하루 평균 10만5000대로 건설 초기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9일 전 국정감사·88올림픽 앞둔 감사에서도…”한강다리 위험하다“
21일 오전 11시 성수대교 나들목 북단에서 열린 ‘성수대교 붕괴사고 25주기 위령제’에서 김학윤 성수대교 붕괴사고 희생자 유가족 대표가 헌향하고 있다 (사진=김보겸 기자)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김학윤 성수대교 붕괴사고 희생자 유가족 대표는 추도사에서 “25년 전 오늘 오전 7시44분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은 평상시와 다름 없이 출근하고 등교하고 있었다”며 “그 전에 성수대교를 건넌 사람들이 다리가 이상하다며 신고를 했지만 관계기관조차 무슨 일이 있겠냐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기본에 충실했다면 꿈 많은 학생들과 다른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위험 경고신호는 사고 이전부터 있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9일 전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는 한강 교량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다. 국회 건설위원회는 “성수대교의 교각상태나 하상세굴(하천바닥의 토사가 씻겨 파이는 현상) 정도가 모두 불량”이라며 사고 위험성을 특정해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서울시가 일상점검을 하는 데 전문기술직원은 없이 형식적 점검만 한다”는 추궁도 나왔다.

감사원도 교량의 보수 필요성을 지적했다.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5년, 감사원은 한강 15개 교량에 대한 안전도 감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성수대교에서 교각과 보를 연결하는 교좌 5개소와 철구조물 1곳에서 부식과 균열 등의 결함을 발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사고 바로 전날에도 상판 이음새 균열로 인한 보수공사를 진행했지만 관리 주체인 서울시가 교량 통제에 나서지 않으면서 참사를 불렀다. 무사안일 행정이 화를 키운 것이다.

◇25년 전에도 ‘예견된 인재’…예견 넘어 예방으로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위험 신호를 인지한 건 성수대교뿐만이 아니다. 다음해인 1995년 6월 29일에는 지은 지 5년 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했다. 사고를 전하는 당시 보도의 헤드라인들은 또 다시 ‘인재가 빚은 참사’였다. 삼풍백화점 역시 사고 당일 오전부터 붕괴조짐을 보였다. 지붕이 기울고 바닥이 갈라졌으며, 천정에서는 물이 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9년 광주 클럽 붕괴. “희생자의 고귀한 생명과 가족의 고통을 승화해 부실공사 시대의 종언을 고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감정단 활동백서가 무색하게 ‘대형 참사 공화국’을 통과해 왔다. 하지만 올해도 크고 작은 도심 속 건물 붕괴와 고시원·대형 시장 화재 사고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안형준 건축공학박사는 “숱한 경고 신호를 지나치지 않아야 대형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데 25년 전 성수대교의 교훈을 얼마나 지키고 살고 있는가”라며 “안전을 위해 순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시민의식, 이익 때문에 법망을 피하는 사업주의 인식 전환, 지자체의 무사 안일주의 등 성숙돼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합동위령제에 동참하고 있는 성동구청의 정원오 청장은 이날 “당시 충분히 참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공직사회의 안전불감증이 큰 희생을 불렀다. 늘 죄송스럽고 송구하다”며 “앞으로도 구는 유가족과 함께 할 것이며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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