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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대기·대출 규제·실수요 눌러앉기…전세대란 우려되는 5가지 이유
2020/01/10  09:42:12  매경ECONOMY
# 서울 양천구 목동 A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이 모 씨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룬다. 오는 3월이 전세 만기인데 집주인이 전셋값을 7000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윳돈이 없어 주변 다른 아파트 전세를 물색해봤지만 수천만원씩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이 씨는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규제를 쏟아내지만 정작 전세 거주자들만 피해를 보는 분위기다. 청약가점제 탓에 새 아파트 청약 당첨도 어려워 반전세 물건이라도 구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12·16 부동산 대책 후폭풍에 전셋값이 요동친다. 집주인이 몇 달 만에 전세금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높이면서 세입자들이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머지않아 서울, 수도권 전역에 전세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세대란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배경은 뭘까.

▶전셋값 얼마나 올랐나▷강남·목동 1억원씩 급등 ‘매물 품귀’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9년 12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23% 올랐다. 2015년 11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한 달 내내 전셋값이 하락한 2018년 12월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지역별로는 입시제도 개편으로 학군 수요가 몰리는 강남권 전셋값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강남(0.52%), 송파(0.35%), 서초(0.32%) 등 강남권 상승폭이 컸다. 목동신시가지단지가 위치한 양천구도 한 달 새 전셋값이 0.56% 급등했다. 강서(0.53%), 마포(0.19%) 등 강북 지역도 강남 못지않은 상승세를 보였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봐도 2019년 12월 한 달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0.38% 올라 2018년 10월(0.48%)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폭을 보였다. 향후 3개월간 전셋값 전망치인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전망지수’도 117.3으로 2016년 통계 집계 후 최고치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전망한 공인중개사가 그렇지 않은 중개사보다 많다는 뜻이다.

실제 서울 인기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몇 달 새 1억~2억원씩 뛰었다. 특히 명문 학군 지역 전셋값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강남구 대치은마아파트 전용 84㎡ 전세금은 2019년 10월까지만 해도 5억6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6억6000만원으로 1억원가량 올랐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2단지 전용 65㎡ 전셋값은 2019년 11월 4억원대였지만 한 달 새 5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 인근 목동신시가지7단지 등 인기 단지의 경우 전세 매물이 아예 씨가 말랐다.

목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7단지의 경우 지하철 역세권인 데다 목운초, 목운중 등 인기 학군이라 전세 수요가 넘쳐난다. 이번 대책이 나온 이후 전셋값이 급등했지만 그마저도 소형 평형은 매물을 구하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강북권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2019년 8월 입주한 마포구 신촌숲아이파크 전용 84㎡는 전셋값이 9억원 선에 달한다. 2019년 9월까지만 해도 7억원에 못 미쳤지만 최근 몇 달 새 2억원가량 급등했다.

강남권 전셋값도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 전세는 최근 15억원에 거래돼 2019년 10월(13억5000만원)보다 1억5000만원 올랐다.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 84㎡도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인 12월 17일 9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다. 전셋값이 신고가를 경신했지만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전세 호가가 더 뛰어 11억원 선에 전세 매물이 나온다.

3.3㎡당 매매가가 1억원을 돌파한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도 전셋값이 덩달아 급등 분위기다.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전셋값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전용 84㎡ 전세 매물이 11월 거래가격(15억원)보다 8500만원가량 오른 15억8500만원에 실거래됐다. 이후 호가는 16억원을 한참 넘어선 상태다. 평당 전셋값이 5000만원에 육박해 웬만한 서울 아파트 매매가보다 비싸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그동안 사례를 봐도 정부가 부동산 규제 방안을 내놓으면 매매 시장이 주춤하면서 전셋값 급등 효과가 나타났다. 분양가상한제 영향으로 집을 구매하기보다 신규 분양 대기 수요가 늘어나 전셋값이 들썩이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찮자 국토교통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는 9억원을 초과하는 일부 고가 아파트 영향이 크다. 6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 전셋값은 안정적”이라고 해명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9년 12월 넷째 주 기준 전세보증금 9억원 초과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1.27% 올랐다. 6억원 초과~9억원 이하는 0.67%, 3억원 초과~6억원 이하 아파트는 0.19% 뛰었다. 하지만 6억원 이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0.19%)도 전주 상승률(0.18%)보다 높은 수준이라 전셋값이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중저가 주택 전셋값이 별로 안 올랐다고 하지만 전체 평균치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대출, 세금 규제로 실수요자들이 매매 대신 전세로 눌러앉으면 고가뿐 아니라 중저가 주택 전셋값도 일제히 상승세를 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셋값 과열 양상에 대해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압박했지만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전셋값 급등하는 까닭▷대출 문턱 높아져 전세 수요 급증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한 배경은 뭘까.

첫째,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이 대폭 확대된 영향이 크다. 정부가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은 서울 13개 구(강남·서초·송파·강동·영등포·마포·성동·동작·양천·용산·서대문·중·광진구) 전 지역과 경기 3개 시(과천·광명·하남시) 13개 동, 그리고 정비사업 이슈 등이 있는 서울 5개 구(강서·노원·동대문·성북·은평구) 37개 동으로 확정됐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포·용산·성동구 등 일부 집값 과열 지역을 동별로 구분해 ‘핀셋 규제’했지만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적용 지역을 대폭 넓혔다. 사실상 서울 전역이 분양가상한제 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이 늘다 보니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로또 분양’ 기대가 커지면서 매매를 주저하는 경우가 늘었다.

둘째, 정부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들이 주택 매매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전세를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12·16 부동산 대책을 보면 15억원 초과 고가 주택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금지한 데다 9억원 초과 주택도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 매매가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주택가격에 관계없이 LTV(주택담보대출비율) 40%를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9억원까지 40%, 9억원을 넘으면 20%를 적용한다. 이 때문에 매수 대기자들이 전셋집에 눌러앉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전셋값이 급등한 데다 전세대출까지 막히면서 명문 학군 지역 전셋집으로 이사 가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의 경우 본인 집을 전세 놓고 명문 학군 전셋집을 구해 이사 가는 길이 막혔다. 정부는 갭투자를 막겠다며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의 전세자금대출을 금지했다.

이뿐 아니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받는 기준에 실거주 요건이 추가된 것도 무시 못 할 변수다. 2주택 이상을 보유하면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시세 15억원을 넘는 주택의 경우 1주택 소유자도 세입자에게 임차보증금을 내주기 위한 대출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세를 줬던 집주인들이 실거주 기간을 채우기 위해 기존 전세 기간이 끝나면 본인 소유 주택에 들어가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태욱 동양미래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집값이 급등한 데다 주택 청약 문턱이 높아지면서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전세로 전환하는 수요가 급증하는 분위기다. 저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셋째, 전월세 공급 물량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전셋값 상승세에 불을 지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잇따른 정비사업 규제로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지연되면서 신축 전세 물량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4만2012가구로 2019년과 비슷하지만 2021년에는 이보다 절반 수준인 2만1939가구로 급감할 전망이다.

넷째, 정부 교육정책도 전셋값 상승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대학 정시 비중을 높인 데다 자율형 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명문 학군’ 쏠림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 때문에 서울 대치동, 목동 등 학군 수요가 몰린 지역 전셋값이 급등세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12·16 부동산 대책으로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전세 시장이 더욱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 내집마련 수요가 몰리는 명문 학군, 역세권, 신축 아파트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섯째, 정부와 여당이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향후 전셋값이 더욱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난 임차인이 재계약을 요구하면 집주인이 계약을 의무적으로 연장하는 권리다. 현재 상가 임대차에 대해서만 최장 10년의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 중인데 이를 주택임대차보호법에도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주택 임대 기간은 통상 2년 기준이라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되면 최소 4년의 임대 기간이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갱신청구권과 함께 전월세상한제 도입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전월세상한제는 계약 연장 시 일정 인상률 이상으로 전월세가격을 올려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일례로 2년 전세 기간이 만료돼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을 때 갱신 계약의 전셋값 인상률을 최대 5% 이하로 못 박는 식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들 제도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집주인 재산권 침해, 도입 초기 전셋값 상승 등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다.

앞서 1989년 정부가 주택 임대차 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서울 주택 전셋값이 23% 상승한 바 있다. 이듬해인 1990년에도 서울뿐 아니라 전국 주택 전셋값이 각각 16%가량 뛰었다. 이 때문에 2011년 MB정부 당시 국토해양부는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임대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며 계약갱신청구권을 반대하기도 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공시가격 현실화, 종부세율 인상 등으로 집주인 보유세 부담이 커졌는데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까지 도입하면 이런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우려가 적잖다. 정책을 도입하기 앞서 전셋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전셋값이 급등할 경우 잠잠했던 ‘갭투자’가 되살아날 가능성도 높다. 한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치솟으면서 전셋값과의 가격 차이가 벌어졌지만 최근 전셋값 급등에 ‘갭’이 상당 부분 메워졌기 때문이다. “매매와 전세가격 차이가 줄어들어 갭투자 수요가 몰리면 머지않아 집값이 다시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전셋값 안정시키려면▷공급 규제 풀고 청약 가수요 줄여야전문가들은 전셋값 급등을 막으려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처럼 신규 주택 공급을 막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서울시 규제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도 주춤한 만큼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 공급을 동시에 늘리는 방안도 필요하다.

“서울 도심 역세권이나 명문 학군 지역처럼 수요가 몰리는 곳에 꾸준히 주택 공급을 해주는 방안이 중요하다. 재건축·재개발 등 공급 규제를 풀어주는 한편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쉽게 내놓을 수 있도록 세금 부담을 줄이는 정책도 필요하다. ‘로또 청약’으로 인한 가수요를 막기 위해서는 채권입찰제를 도입해 수익 중 상당 부분을 공공주택 공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태욱 교수 의견이다.

서울, 수도권과 지방 간 전셋값 양극화 현상도 눈여겨봐야 한다.

명문 학군 중심으로 전셋값이 급등한 서울과 달리 지방은 수요가 끊겨 전셋값이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는 곳도 수두룩하다. 전셋값이 계속 폭락할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나타날 우려도 크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6월 기준 전국 12만2000가구가 역전세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집값이 전셋값보다 저렴한 일명 ‘깡통전세’를 막기 위해 전세금 반환보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환보증은 세입자가 일정액의 보증료를 부담하면 보증기관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보증금 분쟁이 터져도 세입자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정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 공급 규모를 늘리기로 했지만 아직 전세보증보험 개념조차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윤재호 대표는 “전셋값 상승, 급격한 월세 전환으로 인한 임차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무작정 전월세상한제 같은 규제를 도입할 것이 아니라 전세보증을 강화하고 실수요자에 한해 전월세 대출 문턱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41호 (2020.1.8~2020.1.14일자)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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