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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데뷔 15년차 하일권 작가…"많은걸 포기해야 했다"
2020/01/10  18:15:52  매일경제

웹툰 대통령, 믿고보는 작가, 연출의 마술사...항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하일권 작가의 학창시절은 만화처럼 알록달록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야심찬 미대 지망생이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했던 길이었기에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예나 지금이나 미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취업이 안되는 직업', '배고픈 직업',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웹툰 데뷔를 서둘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3학년 재학중이던 2006년 첫 작품을 연재했다. 당시 나이가 25살에 불과했다. 하 작가는 "부모님께 성과를 보여드리기 위해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데뷔를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데뷔작이었던 '삼봉이발소'가 총 조회수 1000만회를 넘기면서 그는 떠오르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 '3단합체 김창남', '안나라수마나라', '목욕의신' 등 연재하는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믿고보는 하일권'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그의 작품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처'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 작가의 주인공들은 세상의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외모에 대한 폭력, 꿈에 대한 폭력, 사랑에 대한 폭력.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독자들도 거울 속의 자신을 발견한다. 흑백으로 얼룩진 세상에 색깔을 덧칠하는 작가, 상처받는 영혼에 위로의 말을 건내는 작가. 그런 역할에 가장 충실한 작가가 바로 하일권 작가일 것이다. 올해로 데뷔 15년을 맞는 그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어떤 계기로 웹툰작가가 됐나.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미대에 진학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는데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택한 선배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원하는 작품을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제대 후 복학을 하면서 현실을 생각하게 됐다.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던 도중 웹툰을 발견했다. 2004년쯤 웹툰이 대중들에게 막 알려지던 시기였다. 강풀 작가님의 '순정만화', 양영순 작가님의 '천일야화'같은 작품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책이나 잡지가 아닌 인터넷에서 무료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큰 비용이나 인력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준비했다.

-미술을 하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미대 나오면 '취업도 안되고 배고픈 직업이다'는 인식이 있다. 어머니는 미술학원을 보내며 응원해주셨지만 아버지는 미술에 대해 모르셨다. 사실 데뷔를 학창시절에 급하게 한 것도 부모님께 성과를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후 이듬해 학교를 다니면서 웹툰을 준비했다. 마침 파란닷컴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와 신인만화가 코너를 통해 데뷔했다. 아버지가 첫작품을 보고 굉장히 좋아하셨다. 지금은 누구보다 먼저 제 작품을 챙겨보고 어머니만큼 응원해 주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 꿈에 대한 얘기가 많다.

▷그 시절에는 꿈이라는게 화두였다. 삼봉이발소도 그렇고 안나라수마나라, 목욕의신 모두 꿈에 대한 얘기였다. 그때까지 가장 하고싶은 이야기가 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반짝거리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에 경험과 감정을 많이 넣는 편인가.

▷넣을 수밖에 없다. 작품이라는 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 얘기를 100% 오픈할 만큼의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히 섞는다. 진실 반 이야기 반.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던 작품은 '병의 맛'이다. 공황장애에 대한 얘기는 어떤 식으로든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작품을 기획할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병의 맛'은 분명히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만화를 만들고 싶었다. 공황장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마감을 해야하는 작가에게 공황장애는 큰 고통일 것 같다.

▷공황증세가 처음 온 것은 오래전이다. 그 당시에는 뭔지도 몰랐다. 사회적으로 공황장애에 대한 개념도 생소했다. '목욕의 신'을 연재할때는 공황장애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바로 휴재했다. 연재를 마무리 못할 수도 있었다. 모든 게 하기 싫었다. 어느 순간 스트레스를 풀 줄 모르는 사람이 돼 있었다. 결국 3개월 쉬고 결국 마무리를 했는데, 그 뒤로 스트레스라는 것에 굉장히 관심을 갖게 됐다. 스트레스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예전에는 작품 두개를 동시에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시스턴트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려한다. 인간관계든 외부요인이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웹툰 작가의 일과가 궁금하다.

▷사실 진짜 말씀드릴게 별로 없다. 아침에 작업실 나와서 일하고 점심먹고 일하고, 저녁먹고 일하고. 밤에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든다. 요새는 조금 일찍 작업을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 한다. 운동도 하려는 편이다.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 여행 다니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공황장애가 나타난 이후로 멀리 못 간다. 비행기 타는 것도 무섭고 그래서 집에서 주로 쉰다.

-학창 시절은 어땠나.

▷진짜 너무 무미건조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입시 때문에 학교와 미술학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인생이 너무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냥 답답했다. 사실 사춘기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는 그리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낙서를 끼적대는 것도 좋아했다.

-일요웹툰 '스퍼맨'이 3화까지 나왔다. 성욕을 원천으로 하는 히어로가 인상적이다.

▷스퍼맨을 시즌으로 연재할 생각은 없었다. 스퍼맨 시즌1도 원래는 완결을 지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스퍼맨은 다른 작품과 달리 에피소드로 확대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도 웬만하면 작품 한개로 완결을 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이렇게 3편까지 연재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도전이었고, 용기를 내었어야 했던 작품이다. 딱히 성인용 만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히어로물을 굉장히 좋아했다. 모든 히어로는 특정 힘을 원천으로 한다. 성욕의 힘을 원천으로 하는 히어로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작품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나.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한다. 댓글이야말로 웹툰작가들이 받는 가장 큰 혜택이자 축복이다. 과거 단행본이나 잡지에 연재하던 만화작가들은 독자 피드백을 받기 힘들었다. 엽서를 받거나 몇주에 걸쳐 오는 팬레터를 받는 수준이었다. 웹툰이 생기면서 창작물을 보여주자마자 생생한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다. 창작자로서는 굉장히 기쁜 일이다. 힘이 된다.


-웹툰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다.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면 좋은 직업이다. 좋은 직업임과 동시에 많이 힘든 직업이다. 안 힘든 직업이 없겠지만, 웹툰작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 만화 외에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인간관계, 여가활동, 취미, 시간의 여유…모두 포기해야한다. 재능이 탁월한 만화가는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 작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작품 하나만 파도 힘들다. 요새는 경쟁도 치열해져서 더 힘든 직업이 됐다.

-포기해야 하는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다들 만화를 좋아해서 웹툰작가가 된다. 그런데 작가가 되면 그 취미를 잃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것을 하냐'는 말을 자주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작품을 만들지 않고는 못 베기니까 어쩔 수없이 한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작품을 하고 싶은 분들이 도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 떨어져나갈 것이다.

-한국웹툰의 세계화가 이슈다. 웬툰산업을 어떻게 보는가.

▷대단한 일이다. 한국 웹툰이 세계에 진출한 것은 굉장히 오래됐다. 네이버웹툰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기반을 닦았다. 예전에는 해외에 진출하려면 단행본을 수출해야 했다. 단행본 수출은 굉장히 어렵고 번거롭다. 지금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것이 수월해졌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독자들에게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굉장한 발전이다. 케이팝(K-POP)이나 영화처럼 한국 브랜드를 알리는 한류의 수단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웹툰 작가들의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불법사이트가 지금도 있다. 몇 년 전부터 기승을 부리면서 타격이 컸다. 매출과 조회수가 말도 안되게 줄었다.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해외에 서버를 두는 편법이 성행한다. 불법 웹툰 사이트 '밤토끼'가 잡혔다지만 아류 사이트가 더 늘어났다. 근원적으로 모조리 없앨 수 없다고 한다. 음악도 과거에는 무료로 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정당하게 콘텐츠 비용을 지불한다. 인식 개선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장기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나.

▷'스퍼맨'이 올해 초쯤 끝날 것 같다. 그리고는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 우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고 싶다. 쉬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면 준비해서 돌아오고 싶다. 사실 휴식을 취한 적이 거의 없다. 연재를 끝내도 몇 개월 못 쉬었다. 불안한 것도 있다. 이렇게 작품이 쏟아지고 신인작가가 나오면 금방 잊혀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이번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오래 쉬어볼 생각이다.

▶▶ He is…1982년생. 서울 동성고등학교를 나와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3학년때인 2006년 '삼봉이발소'로 데뷔했다. 신인작으로는 드물게 조회수가 1000만회를 기록하며 '웹툰계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이후 '3단합체 김창남', '안나라수마나라', '목욕의신'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성공하며 '믿고 보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세심한 연출력로 흥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스퍼맨 시즌3'를 연재하고 있다.

[박의명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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