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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살리에리가 질투했던 모차르트의 그것
2020/01/17  15:13:49  아시아경제

천재적 재능에 기인한 예술이 아니라 자율성으로 음악을 대한 모차르트

규칙 얽매인 살리에리는 이해 못해…저자는 이러한 인간적 창조성에 주목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노인성 치매를 앓다가 별세했다. 그는 치매 병동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독살했다고 횡설수설했다. 이 말은 사후 신문에 실려 러시아까지 퍼졌다.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은 살리에리가 진짜 살인범은 아니더라도 예술의 이름으로 모차르트를 죽인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5년 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짧은 비극을 썼다.


비극에서 살리에리는 절규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자기의 음악보다 뛰어난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이지 않았으면서 왜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푸시킨은 어째서 소문만 듣고 살리에리를 살인자로 그렸을까.


오종우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가 쓴 '예술적 상상력'은 천재에 대한 통념과 고뇌에 찬 살리에리라는 진부한 전설을 철저하게 깨부순다. 살리에리가 왜 예술적 지식을 쌓고도 폭발시키지 못했는지, 무엇이 상상력과 창조성을 억압하는지에 주목한다.




많은 사람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전설에서 살리에리를 더 동정한다. 영국의 극작가 피터 섀퍼(1926~2016)가 쓴 희곡 '아마데우스'의 영향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살리에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희곡 대부분을 차지하는 긴 회상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작품들에 감탄하고 질투한다. 경박한 모차르트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불같이 분노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리에리는 관객을 향해 느닷없이 "그대들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관객 또한 특출한 재능이 없는 자기 신세에 대해 한탄하며 천재를 시샘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1984)에서는 이런 점이 더 선명하게 다뤄진다. 살리에리가 더 확고하게 자기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요, 수호자라고 말한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많은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미국 아카데미 등 영화제에서 상도 휩쓸었다. 대다수 평론가가 영화 내용에 수긍하고 높은 점수를 줬다. 모차르트의 빼어난 음악을 배경으로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주제와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살리에리 현상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어느새 공범이 되어버린 평범한 우리는 살리에리를 살인범이라고 몰아붙이기보다 변명해준다"라고 썼다.


"이 작품에서 살리에리는 특정한 캐릭터가 아니라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통 사람이었다. 영화에서 모차르트는 아무런 고뇌도 고민도 없이 순식간에 음악을 지어내는 천재다. 그러다 보니 모차르트는 상스러울 정도로 경박한 인물로 나온다.“


섀퍼는 어떤 자료에서도 모차르트가 고민하면서 작곡했다는 기록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와 대결한 것이 아니었다. 경솔한 모차르트에게 천재적인 음악성을 준 신에게 저항하며 신을 모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천재를 신적인 존재로 그리면서 열정은 지녔으나 능력이 없어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과 대비시키고, 그렇게 고뇌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한 여운이 남는다. 작가가 의도한 주제와 달리 작품 전반에 걸쳐 흐르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계속 귓가를 맴돈다.




푸시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아마데우스'와 다른 테마를 다룬다. 언뜻 보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은연 중 남이 잘 되는 꼴을 공연히 깎아내리려는 심리가 살리에리에게 당연히 있으리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속의 살리에리는 더 나은 음악을 시샘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에게는 오히려 더 뛰어난 작곡가가 필요했다. 그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끝내 독살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 교수는 살리에리가 예술을 이해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살리에리는 음악을 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예술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끈기를 가지고 작곡을 배웠다. (중략) 살리에리는 예술을 개념으로만 이해한다. 그래서 그가 예술에 관해 언급하는 말들은 자주 당착에 빠진다. 이를테면 '나는 드디어 무한한 예술 세계의 최고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던가'라고 자랑한다. 예술 세계가 무한하다면서 그것의 최고 단계, 즉 한계를 언급하고 있다. 예술을 논리적으로 규정하다가 비논리에 빠지는 모습이다.“


규칙에 얽매인 인물에게서 여유는 찾을 수 없다. 그는 모차르트가 던지는 농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지하게 대꾸한다. 여유가 없기에 개념으로 도식화되지 않는 나머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폭력성이 필연적으로 살인을 낳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모차르트는 과연 음악의 재능을 타고난 신적 존재일까. 그렇게 보는 것은 살리에리의 관점에 따른 것이다. 사실 모차르트도 불면에 시달리면서 작곡한다. 살리에리와 달리 적나라하게 작곡의 고뇌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그 차이는 두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살리에리의 끊임없는 말은 구체화되지 못하고 자꾸 흩어진다. 그가 작곡을 개념으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그 대상을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하기에 그가 말하는 음악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모차르트는 음악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아노를 칠 뿐이다.


작곡가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개념어가 아니라 음악 자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리는 살리에리의 독한 독백으로 답답했던 무대를 틔운다. 새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예술을 위해 예술가를 죽인다는 지독한 역설에 대해 외친다. 오 교수는 이를 두고 "예술가의 말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 독설은 권력을 탐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쥔 자들이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예술가들을 제거하는 일을 자행해왔다. 나치가 특히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오 교수가 생각하는 예술은 규범에 억눌린 생명을 살리는 작업이다. 예술 작품이 새 질서를 창조한다는 이유에서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리는 이 사실을 관객이 체험하게 해준다.


푸시킨은 그것을 천재성이 아닌 인간의 자율성으로 봤다. 예술 창작의 주체인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노예적 성향의 살리에리에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희곡에서 살리에리가 질투하는 모차르트의 작품은 '돈 조반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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