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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③고속도로의 건설과 새마을운동(1970~80년대)
2020/08/02  09:01:07  아시아경제

1974년 제1회 ACPAC(아시아 시멘트 생산국 대표자회의)의 모습.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한국은 연간 6000여만톤의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12위의 시멘트 대국이다. 시멘트 기술면에서도 1980년대부터 해외에 생산기술을 수출할 만큼 시멘트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한국 시멘트산업의 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난 60~70년대 경제발전기 국가기간산업의 역할을 다했지만, 2000년대 들어 환경을 망치는 공해산업으로 낙인찍히면서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시멘트산업은 친환경산업으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본지는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나고 있는 한국 시멘트산업의 역사를 7회에 걸쳐 재조명해 본다.[편집자주]


시멘트산업은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 경제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속도로, 댐, 교량,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각종 건설사업의 원동력이 됐다. 또 비료, 섬유, 철강산업과 함께 국내 공업생산을 주도했고, 시멘트 2차 제품의 발달과 레미콘 산업의 발전, 콘크리트 제조기술의 개발 등에도 크게 기여했다.


1960년대가 양적성장에 치중하던 시기였다면 1970년대는 양과 질의 균형성장을 추구하는 한편 기술개발, 환경개선 등에도 큰 진전을 보인다. 이 기간 생산능력은 1971년 692만톤에서 1982년 2346만톤으로 3.4배, 생산(클링커)은 664만톤에서 1906만톤으로 2.9배, 국내 수요는 610만톤에서 1430만톤으로 2.3배, 수출은 109만톤에서 560만톤으로 5.1배 증가했다.


국제적인 위상면에서도 생산은 1971년 세계 20위에서 1981년 12위로, 시멘트 수출은 1971년 세계 11위에서 1981년 4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그러나 찬란한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제원조 종결,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금리 지속 등 국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정부가 '안정·긴축정책'으로의 전환하게 되고 시멘트 업계도 타격을 입게 된다.


경기후퇴의 영향으로 국내 시멘트 소비성장률도 둔화된다. 고층건물의 신축 억제정책이 이어졌고 그 여파가 민간부문의 건설의욕을 감퇴시켜 과거 2~3년간 30~40% 성장했던 내수증가율은 1970년에는 25%, 1971년에는 15%로 점차 둔화됐다.


이 같은 시멘트 내수성장률의 둔화에 불안을 느낀 각 시멘트 생산회사는 덤핑판매를 초래하게 된다. 불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은 탓에 동양시멘트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고, 대한양회는 1975년 쌍용양회에 흡수 합병되는 업계 지각변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1970년대 들어 국산 시멘트가 해외에 알려져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수입 희망국이 점차 늘어나는 등 해외 수출물량이 증가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출국 상호간의 정보교환과 공동이익 추구를 위한 협의체 구성 등 교류의 활성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국양회협회는 아시아 지역 시멘트 생산국가간의 공동이익 추구와 협력강화를 위해 1974년 서울에서 ACPAC(아시아 시멘트 생산국 대표자 회의) 1차 회의를 개최하는 등 국제사회와도 교류를 본격화 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국제협력기구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한국 시멘트산업의 국제적인 지위상승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의 모습. [사진=한국 시멘트협회]

새마을운동도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1970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수재민 복구대책과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해 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마을가꾸기운동을 시작하고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리동(行政里洞)에 시멘트 335포대씩을 균일 무상지원해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


이 결과 정부가 무상공급한 시멘트로 부락민들이 자체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해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낸 1만 6600개 부락에는 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인 협동노력을 장려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새마을운동은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하게 되면서 시멘트 내수도 안정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한국 시멘트협회 관계자는 "1970년대는 서울에서 1회 ACPAC가 개최돼 한국 시멘트산업의 국제적인 지위가 상승된 것과 새마을 운동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서 "새마을 운동은 한국 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시멘트 내수의 증가를 가져와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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