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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후보 아도니스 시인 단독 인터뷰 "나는 아직 `나`를 찾는다, 내가 과연 누구인지를"
2020/09/16  17:03:10  매일경제

[사진출처 = ⓒBahget Iskander]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90)를 두고 생전에 이렇게 평했다.

"아도니스 시는 문화적이고 민족적인 한계를, 특히 아랍이나 이슬람과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때 문화를 초월한다. 비유하자면 릴케와 가장 유사한 '보편적인' 시인이다."

항구도시 라타키아에서 1930년 태어난 아도니스는 저항세력을 결집하다 투옥된 전력이 있고, 내전(內戰)의 파고를 거쳐 레바논 베이루트로 망명한 뒤 오래 파리에 살았다. 올해 90세, 세계의 '보편적인 고통'을 시로 써온 그는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최근 한국어 시집이 출간됐기에 질문지를 보냈더니 프랑스어로 쓴 10개의 웅장한 답변이 지난 14일 도착했다. 한국 언론 첫 인터뷰다.

"한국은 일종의 무한(無限)을 몸으로 보여주는 나라죠. 두 번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출간된 이번 시집은 한국 독자를 통해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10세기의 위대한 작가 알 타위디의 전언처럼 '친구는 그대 자신인 타자'이니까요."

아도니스 신작 시집 '너의 낯섦은 나의 낯섦'(민음사 펴냄)은 노벨상이 예측되는 유명한 해외 시인의 번역서 이상의 의미를 획득한다. 시집 '바람 속의 잎새들'과 3인 공저 시집 '걸프만의 이방인'이 오래전에 번역된 바 있지만 현재 절판돼 구하기 어렵다. 아도니스 시집은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문명의 폭력성에 관한 반작용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인간은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야만적인 존재입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갈대'에 지나지 않는 존재인 인간 안에서 신비스러운 일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함께 일어나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시는 우리가 처한 이러한 상황을 동시에 넘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 비극적인 인간 실존에 더 잘 응답하게 해줍니다. '나'와 '남'을, 또 세상을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시이지요."

아도니스 시는 자아, 타자, 세계를 가로지른다. 이슬람에서 수피즘(Sufism)이라 일컫는 신비주의 사상에서 그의 시는 움튼다. 자아와 타자를 잇는 가교(架橋)의 정신으로 요약되는 수피즘의 시각에서 본다면 신(神)은 세상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존재하는데, 이 도식에선 세계 속 타자가 곧 신적인 가능성을 획득한다.

"성경이 그렇듯이, 신은 세상의 밖에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에너지로 해석됩니다. 수피즘에선 신이 세상의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 존재하고, 온전히 세상의 것입니다. 또 수피즘은 세상을 신자와 배교자로 나누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이면서 '남'이고 우리의 몸마저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의 일부이지요. 그 신념 위에서 시를 썼습니다."

수피즘의 관점에선 죽음도 삶도 등가를 이룬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세상을 '재(灰)의 천국'으로 바라본다. 삶에 겹쳐진 죽음, 죽음에 포개진 삶.

"조금 전에 수피즘을 통해 접근해 본 관점에 따르면 죽음은 삶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언제나 사람은 죽으면서 살고, 살면서 죽는 거죠. 그래서 삶은 가장 눈부신 순간도 재의 천국입니다."

수피즘과 더불어, 아도니스 시의 기원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 가닿는다. '세상 만물이 영원히 변화한다고, 그래서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전언은 아도니스가 믿는 세계에의 진단 같다. 그러나 영속성이 제거된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무엇보다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 가학적이다. 세계의 상처는 인간에게서 온다. 평생 화두였을 '폭력 없는 세상'을 물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진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현실에 구현하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어요. 신이라고 해도 인간이 찾는 그 진리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은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에게 '나의 잘못은 무엇인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에 다가서는 자세일 겁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건 자신을 비판하는 자세예요."

아도니스란 이름은 그의 가명이다. 본명은 알리 아흐마드 사이드다. 예명 아도니스(Adonis)를 택한 이유로 그는 일신교에 대한 거부감을 꺼냈다. '알리'는 무슬림 남성이 사용하는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연인 이름인 '아도니스'를 예명으로 택한 건 일신교에 연결된 소속감을 벗어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소속과 다른 문화에서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도니스 이름 곁에 자주 놓이는,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수식어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노벨문학상은 사실 모순적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가 세계의 모든 문학을 평가한다는 취약성을 내재하면서도 동시에 세계 독자들에게는 그 상의 수상이 성취와 분명히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도니스에게 이율배반적인 상과의 운명을 물었더니 그는 "저로서는 관심 없는 주제"라고 짧게 답했다.

인류가 신음하는 코로나19 시대의 풍경에 대해 그는 독자에게의 위로의 말로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격리된 상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시간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처한 상태는 슬프다. 인간이 그렇게까지 나약했던 걸까. 인간 안에 있는 인간적인 것의 의미를 되짚어볼 시간"이라고 당부했다.

두 개의 세기(世紀)를 살아가며 시를 써온 아도니스는 자신의 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 혹은 문장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왜 시를 써야만 했는지를 시구로 표현해달라 요청했다.

"아마도 이런 답이 가능하겠지요. '나는 나 자신을 찾아다닌다. 아도니스가 누구인지 누가 아도니스에게 말할 수 있는가?'"



<아도니스 시인 서면 인터뷰 전문(全文)>

1. 안녕하세요. 한국의 수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늦은 오후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저는 아주 먼 거리에서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이 글을 나누고 있기에 여쭙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서 보시는 풍경이 궁금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답변을 쓰고 계신지요. 한국은 기후변화로 인한 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고, 어제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지금 나무들로 무성한 아름다운 산들에 둘러싸인 서울에서 자연의 시정(詩情)에 젖어 있을 당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곳 파리의 하늘은 잿빛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잿빛 하늘 너머로 제주도를, 어느 영역에서나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서울을, 심오한 단순성을, 그리고 ‘남’에게 베푸는 환대를 볼 수 있습니다.

2. 한국에서 선생님 시를 읽을 수 있는 기회는 그간 적었습니다. 약10여년 전'바람 속의 잎새들'이 번역 출간됐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고 대담집'폭력과 이슬람'을 제외하면 이번 시집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내가 알지 못하는 이국의 언어와 가본 적 없는 그 나라의 말로 익명의 얼굴을 한 독자와 내면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의 기분이랄까요. 문화권이 먼 나라일수록 그 기분은 이색적일 듯합니다.

한국에 이미 두 번 가보았습니다. 한국은 아주 풍요로운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더 찾아가 봐야겠죠. 한국은 일종의 무한(無限)을 몸으로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새로 출간되는 시집은 내가 한국의 독자들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나에게 친구가, 다른 친구가 될 테고, 10세기의 우리의 위대한 작가 알 타위디가 말한 대로 “친구는 그대 자신인 남”이니까요.

3. 이번 시집을 번역하신 김능우 선생님은 선생님 시가 수피즘, 헤라클레이토스,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동의하시는지요. 그렇다면 특히 그 가운데"자아와 타자 간에 경계를 허무는" 수피즘에 주목하고자 하는데, 그 수피즘은 자아와 타자를 잇는 가교의 정신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수피즘의 시는 선생님께 어떤 의미일까요.

물론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니체, 그리고 수피즘의 영향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 만물이 영원히 변화한다고, 그래서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고 말했죠. 니체의 경우는 특히 일신교에 대한 거부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비주의(즉, 이슬람에서는 수피즘)에 관해서는 우선 그것이 전 세계에 잘못 받아들여지고 잘못 이해되었다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종교적 정통성의 관점으로 신비주의를 보았기 때문이고, 이슬람의 수피즘 역시 마찬가집니다. 사실 신비주의는 그러한 종교적 정통성과 아무런 관련이 있습니다. 신비주의를 있는 그대로, 신비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시각을 통해서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첫째, 수피즘은 신의 개념을 바꾸었습니다. 성경의 신이 그렇듯이 신은 세상의 밖에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이죠. 반대로 수피즘에서 신은 세상 밖에 있지 않습니다. 신은 세상 안에 존재하고 온전히 세상의 것입니다.

둘째, 수피즘에서는 세상을 신자들과 배교자들로 나누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다른 주체입니다. 나이면서 남인 거죠. 남은 자기 자신을, 혹은 ‘나’라는 주체를 이루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는 “남은 나다”라고 말합니다. 수천 년 뒤에 랭보가 “나는 남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죠.

셋째, 정체성은 과거의 유산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만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갑니다.

넷째, 언어와 글쓰기 얘기를 해보자면, 글을 쓸 때 우리는 상상과 꿈과 직관과 황홀경, 그리고 상상의 세계에 속하는 모든 것에서 출발하여 우주와 세상과 인간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몸은 그 상상의 세계의 일부가 되죠. 글을 쓸 때는 합리성의 모든 검열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 역시 훗날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가 이론으로 세우게 되죠.


[사진출처 = ⓒBahget Iskander]

4. 시 '연금술의 꽃'을 깊게 읽었습니다. '재의 천국'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90년의 세월과 그 안에서 쓰는 시는 '재의 천국'으로 은유될 수 있을까요.

조금 전에 수피즘을 통해 접근해 본 관점에 따르면 죽음은 삶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언제나 사람은 죽으면서 살고, 살면서 죽는 거죠. 그래서 삶은 가장 눈부신 순간에도 재의 천국입니다.

5. 세계의 폭력, 그 앞에서 시는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굳이 이슬람에서의 IS 등 폭력 사태가 아니더라도, 세계인들의 다수는 누구나 분노에 차 있고 또 분노가 통치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분노의 시대, 시는 과연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존재죠. 파스칼이 말한 대로 ‘갈대’에 지나지 않는 존재인 인간 안에 그 모든 신비스러운 일과 또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시는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살아가면서 동시에 넘어설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고 남과 세상도 더 잘 알게 해줍니다. 또한 특별하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인간의 실존에 더 잘 응답하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하이데거가 말한 대로 죽기 위해 살아가니까요.

6. 대담집 '폭력과 이슬람'에서 폭력의 이유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자에 관한 인정과 약자를 향한 포용성, 그 외에 우리 시대의 폭력을 줄이는 해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남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을 자기가 먼저 겪어 보아야 하지요. 이 땅에 진리를 구현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진리를 찾아다닙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신이라 해도 그 진리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신에도 많은 선지자와 많은 종교가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 자신이 늘 진리를 찾는다고 믿으면서 살아간다면, 이미 시작은 이루어진 겁니다.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요? 인간은 남을 비판하기 전에 매일 자기 자신에게 “내가 무엇을 했는가? 나의 잘못은 무엇인가?” 자문해봐야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묻기 전에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야 하는 거죠. 인간이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요?

7. '아도니스'라는 선생님 존함에 관해 여쭙습니다. 본명은 '알리 아흐마드 사이드'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아도니스란 예명으로 불리게 된 계기 혹은 그 이름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을지요. 자료로서는 그 의미를 들었습니다만 선생님께 정확한 의미를 듣고자 합니다.

우선 일신교에 연결된 모든 소속을 벗어던지기 위한 이름입니다. 그리고 다른 소속과 다른 문화에서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름입니다.

8. 매년 반복되는 질문이고, 또 공허한 질문일 것도 같습니다. 노벨문학상이 문학적 성취의 바로미터 혹은 준거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유럽의 작은 나라가 세상의 모든 문학을 평가하는 자격을 획득하는지도 개인적으로 의문이긴 합니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그 상이 세계 독자들에게 주는 인상은 명백하게도 위대한 성취와 관련됩니다. 그런 점에서 질문 드리자면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데 그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또 올해10월 수상자로 호명되면 가장 먼저 어떤 발언을 남기시겠습니까.

저로서는 관심 없는 주제입니다.

9. 코로나 시대로 인해 인류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했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울한 시대입니다. 코로나 시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위로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개인적으로 저는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격리된 상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 시간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세상이 처한 상태가 슬프기도 합니다. 어떻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마비시켰을까요? 인간이 그렇게까지 약한 걸까요? 우리들 스스로의 책임도 되짚어 보어야 합니다. 인간 안에 있는 인간적인 것의 의미도 되짚어 보아야 하고요.

10.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수많은 시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 혹은 단 하나의 문장을 꼽아주신다면 무엇이 있을지요. 하나의 응축된 단어/문장으로 선생님 시의 키워드를 독자에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만약 어려우시다면 선생님께 시란 무엇이었을까요. 왜 시를'써야만' 했는지, 그리고 시를 씀으로써 무엇이 '변화'했는지 등.

'나는 나 자신을 찾아다닌다. 아도니스가 누구인지 누가 아도니스에게 말할 수 있는가?'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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