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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면] 어떤 오래된 착각
2021/09/25  00:04:02  매일경제


이번 추석 연휴에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현실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진 건 아니고, 어떤 오해와 착각으로 인해 내 추억의 회로가 엉켜버린 일이다. 어찌 보면 감정과 정서라는, 인간 고유의 무늬와 관련된 암시를 준 일이기도 해서 간략히 정리해보기로 한다.

나는 1980년대 발라드 가요의 세례를 받고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다. 좋아한 가수는 이문세, 조하문, 유재하 등이었다. 그중 이문세와 그의 노래를 작사·작곡한 이영훈 작곡가를 가장 좋아했다. 이문세를 처음 만난 건 1987년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학교만 파하면 집으로 달려갔다. 이문세 4집을 듣기 위해서였다. 옥상에 딸린 작은 내 방에서 이불을 펴고 누워 카세트 플레이어를 귀에 가까이 대고 저녁까지 계속 들었다. 그러다보니 숨소리와 쉼표 하나까지 외울 정도가 됐고 이문세 3집으로 역주행했다가 5집부터는 발매 당일에 구해서 듣고 환희에 휩싸였다. 고3 때 발매된 7집은 내가 가장 깊이 빠져든 강렬한 감성의 앨범이었는데 공부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문세 8집에서는 갑자기 노래가 낯설어졌고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다. 이영훈이 작업에서 빠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언론엔 둘의 결별설이 돌기도 했다. 이후 이문세가 '조조할인'이나 '솔로예찬' 같은 곡을 히트시키기도 했지만, 흥얼거리긴 해도 노래가 좋아지진 않았다. 골든베스트 앨범에 들어 있어서 들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요 근래에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애수'라는 노래를 틀어줬는데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안 좋다'는 선입견을 갖고 듣는데도 너무 좋았다. 이문세 12집에 실린 노래였다. 나는 7집 이후론 전혀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이 노래가 이영훈 작사·작곡이란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이문세가 부르니 이영훈 느낌이 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라디오에서 이문세와 이소라가 함께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가 들려왔다. 멜로디가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역시 이영훈의 곡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지했던 나는 그냥 이소라의 원곡에 이문세가 듀엣으로 참여해 리메이크한 것이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이번 추석 귀경길에 이문세 과거 히트곡을 집중해서 듣고 여운이 남아,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다가 앞서 내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7집 이후의 곡들이 이영훈이 만든 노래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2008년 이영훈 작곡가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그가 생전에 기획한 뮤지컬 '광화문연가'도 두 번이나 관람할 정도였고, 평생 콘서트 세 번을 갔는데 두 번이 이문세 콘서트였던 내가, 무엇보다 3집부터 7집까지 모든 노래를 전부 외워서 부를 줄 아는 내가 사실은 그 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이영훈은 이문세 8집을 제외하고 9집부터는 크든 작든 작업에 다시 참여했다. 특히 12집은 온전히 이영훈의 명곡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이번에 12집 노래를 반복해 들으면서 팬으로서 너무 감격한 한편 죄책감이 들었다.

나무위키로 이영훈의 짧은 생애를 읽어보다가, 그의 홈페이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들어가보았다. 생전 인터뷰, 작품 활동 등이 정리돼 있었는데 그중 눈길을 끈 건 사진 코너였다. 사진마다 이영훈 본인이 코멘트를 남겨놓았는데 관리자가 올린 사진에 제목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등, 술을 한잔 하고 글을 남겼는지 어딘지 흐트러져 있으면서도 사람됨이 잘 드러났다. 날것의 이영훈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였다. 간단한 인물평도 있고, 사진을 찍을 당시 배경에 대한 몇 마디 설명뿐인 말들이었지만, 그걸 전부 읽고 있으려니 내가 왜 그의 노래를 그토록 좋아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어딘가 닮은 구석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나이인 49세에 세상과 작별한 이영훈 작곡가는 이문세라는 좋은 가수를 만나 무장무장 꽃을 피워내다가 일찍 떠났다. 죽기 얼마 전 이문세에게 "우리 담대합시다"라고 말했다는 그를 나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노래들이 있으니 예전의 노래와 잘 이어붙이기해서 천천히 야금야금 감상해볼 생각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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