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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우중진담] '태종 이방원', 동물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2022/01/21  15:26:16  데일리임팩트

아마도, 명절 특집 영화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찰스 헤스톤 주연의 <벤허>(1959)를 처음 본 건. '스펙터클 영화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아카데미 11개 상을 휩쓴 기념비적인 작품. 감독 윌리엄 와일러로 하여금 "신이시여, 진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라는 '자뻑' 멘트를 내뱉게 한 고전 명작. 영화라는 게 뭔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벤허와 멧셀라(스티븐 보이드)의 기구한 우정에 몰입했고 스펙터클한 마차 경주 장면에 매료됐었다. 이후에도 <벤허>를 여러 번 봤다. 좋아하는 고전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호출하기도 했으니, 내겐 아련한 향수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내게 <벤허>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 일이 몇 해 전 있었는데, 영화를 함께 보던 친구의 반응이었다. 그 유명한 마차 경주 장면에서 친구는 연신 얼굴을 구겼다. 처참하게 쓰러져 바닥에 뒹구는 말들을 보는 게 괴롭다며. 그러고 보니 <벤허>는 CG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나온 영화. 전차경주 장면을 위해 2,500마리의 말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영화 홍보로 사용돼 오곤 했는데, 이후 이들이 어떻게 됐는가는 영화 흥행 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친구로 인해 기습한 궁금증에, 자료를 찾았다. 그리고 <벤허>를 찍는 과정에서 100마리가량의 말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벤허>를 향한 나의 애정은 살짝 식었다. <벤허>가 명작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가치관과는 동떨어진 세계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란 사실에.

<태종 이방원> 고꾸라진 말

그래서다. KBS 대하 사극 <태종 이방원>의 동물 학대 논란이 당황스러운 건. 오늘날의 가치관과 동떨어진다고 여겨졌던 50년대식 동물 학대가 2022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문제가 된 건 극 중 이성계(김영철)의 낙마 장면이다.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고꾸라뜨렸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해당 말이 촬영 1주일 후 사망한 사실이 더해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드라마 폐지를 요구하는 글도 올라 온 상황이다.

살펴봐야 할 것은 와이어를 사용해 말을 고꾸라뜨리는 촬영 기법이 미국에선 1939년 이후 금기화 된 촬영 기법이란 점이다. 동물을 소품처럼 대하는 방식이 오늘날 공영 방송에서 버젓이 사용됐다는 건, 우리 방송의 동물보호 인식이 미국보다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것이 일종의 학대라는 점을 제작진이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뼈아프고, 만약 인지했는데 이런 일을 벌였다면 더욱 우려스럽다.

'No Animals Were Harmed'

한국동물보호연합에 따르면, 미국 촬영 현장에서는 동물 학대 방지에 대한 인식이 1980년대부터 업계에 깔렸다. 동물단체 '미국인도주의협회(AHA)'는 이를 주도하는 단체 중 하나. 이 단체는 '영화 촬영 시 동물 안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혹시 동물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본 적이 있는가. 'No Animals Were Harmed®(촬영 중 동물이 위해를 받지 않았다)'라는 문구. 이는 AHA의 승인을 받은 영화라는 의미로, 동물 보호에 대한 할리우드의 의지를 보여주는 표식이다.

물론, 할리우드라고 해서 이것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구명보트에 살아남은 소년과 벵갈 호랑이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려 아카데미상 4개 부분을 휩쓴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No Animals Were Harmed®'가 버젓이 등장하는 영화. 그러나 촬영 당시 벵갈 호랑이가 수조 탱크에서 익사할 뻔했다는 사실이 제작진에 의해 은폐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뒤늦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할리우드 리포터'를 비롯한 언론이 이러한 사실을 꾸준히 지적하며 감시와 관리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요한 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 변화

반면 우리나라에는 오랜 시간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딱히 없었다. 다행히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KARA)가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한 사례가 있다. 그게 언제? 불과 1년 조금 넘었다. 가이드 라인 발표 당시 카리의 대표이기도 한 임순례 영화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동물과 함께 영화를 촬영할 때 아무런 현장 매뉴얼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점점 더 동물들의 존재가 커지는 흐름이기에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입니다."

임순례 감독의 말은 이번 <태종 이방원> 사태에 대한 일종의 예언이었을까. 확실하게 알게 된 건, 가이드라인이 생겼어도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핑계 댈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다른 드라마 현장도 그렇게 해 왔잖아?' 등등. 모두 맞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서'가 아닐까. 보호받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촬영장은 학대의 현장일 뿐이다. <태종 이방원> 사태가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동물 학대를 막는 중요한 반면교사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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