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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죽은 약자'를 숭배하는 사회… 은폐된 혐오와 차별
2023/06/07  13:29:35  아시아경제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살아 있는 유대인은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의 집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모인다. 나치를 피해 2년간 벽장에서 숨어 있던 유대인 작가의 이야기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관 현장에서는 다소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한 직원이 유대인을 상징하는 '야물커'라는 모자를 쓰려고 하자, 관리인들에 의해 제지를 당하고 만 것이다.


저자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야말로 안네 프랑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고 설명한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중의 흥미를 끌었던 건 주인공인 소녀가 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기 앞에서도 '인간의 내면'과 같은 보편적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끔찍한 참상 대신 누구에게나 듣기 좋은 이야기만 남아 기록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저자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사회가 그동안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기억해왔던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홀로코스트의 실상에 대해서는 은폐하면서 피해자들의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그들에 대한 혐오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사죄하고 반성해왔다는 기존의 인식에 정면으로 반한다. 실제로 '살아있는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 속에 기억되지 않는다. 오직 보편적인 메시지를 지닌 유대인의 이야기나 예술이 회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한나 아렌트와 샤갈이 유대인 출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같은 혐오의 원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형 참사나 범죄를 가슴 아픈 기억으로 오랫동안 떠올리지만, 정작 그 피해 가족과 생존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피해자는 영원히 피해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은 전형성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오랫동안 사회적 학대의 대상이었던 약자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우리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온 이들은 겉보기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회에서 배제된다. 이들이 적나라한 차별의 현실을 드러내는 순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저자는 은폐된 혐오를 멈추기 위해선 겸손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잘못된 애도는 피해자와 약자에 대한 우월감과 안도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순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세상은 부서진 세상이다. 부서진 세상을 재건하는 일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거기에는 겸손과 공감,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변함없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 데어라 혼 | 364쪽 | 1만8500원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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