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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로렌'은 왜 '미국의 상징'으로 불릴까
2020/03/27  06:30:50  아시아경제

[출처 = 폴로 랄프 로렌 홈페이지]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전 세계 대통령과 영부인들은 대통령 취임식에 자신의 나라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옷을 입고 나온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역대 44명의 미국 대통령 중 40명이 취임식 의상으로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 연미복을 택했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남성 의류브랜드이기 때문. 그렇다면 영부인은 어떨까. 영부인들도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의 의상을 선택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를 비롯, 역대 많은 영부인들의 선택을 받은 건 바로 '랄프 로렌(Ralph Lauren)'이다.


폴로(Polo)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미국 패션 브랜드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은 1967년 설립돼 50여 년이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을 가장 잘 표현한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미국 동부 8개 명문 대학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즐겨 입는 신사복을 일컫는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유행시켰고, 지금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아메리칸 캐주얼 룩'을 선도하는 등 가장 '미국스러운 패션'을 주도하는 브랜드다.



랄프 로렌 [출처 = 폴로 랄프 로렌 홈페이지]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백만장자를 꿈꾸다

창업주이자 2015년까지 약 48년 동안 랄프 로렌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은 사실 가난한 유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국 상류층을 대변하는 패션으로 인기를 끈 브랜드를 만든 것과는 대비되는 가정환경이었다. 랄프 로렌의 본래 이름도 랄프 리프시츠(Ralph Lifshitz). 리프시츠가(家)는 랍비(유대교의 율법학자)를 배출하는 집안이었는데, 그는 종교보다 경제적인 성공에 관심을 보였기에 종교인이 떠오르는 리프시츠라는 성을 '로렌'으로 변경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자신의 꿈을 '백만장자'라고 써낼 정도였다. 랄프 로렌이 '아메리칸 드림'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랄프 로렌은 뉴욕시립대학을 다니다 실무를 통해 경영을 배우기로 마음먹어 학교를 중퇴하고 브룩스 브라더스 판매 사원으로 입사하면서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넥타이 제조업체인 리베츠 앤 컴퍼니(Rivetz & Company)에서 일하다 1967년 넥타이 제조업체 보 브러멜(Beau Brummell)의 도움으로 '폴로(Polo)'라는 이름의 넥타이를 판매했다. '폴로' 넥타이가 인기를 끌면서 로렌은 1968년, 5만 달러(약 6000만원)를 대출받아 남성복 브랜드로 확장했다.


브룩스 브라더스, 멜르단드리 등의 전통적인 브랜드 콘셉트에 랄프 로렌은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접목해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미국 대형 백화점 체인 블루밍데일즈는 폴로 남성복의 인기를 알아봤고, 폴로 바이 랄프 로렌(Polo by Ralph Lauren)의 첫 부티크를 열어줬다. 1970년에는 미국에서 1942년 이래 매년 뛰어난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코티상(Coty Prize)'을 받기도 했다.



1976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로버트 레드포드 [출처 - 네이버 영화]


국민 브랜드로 등극한 폴로 랄프 로렌

그의 전성기는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1971년 여성용 테일러드 셔츠를 출시하면서 여성복으로 라인을 확장했고, 1972년에는 지금까지 폴로 랄프 로렌의 상징으로 쓰이는 폴로 선수 모습의 로고가 그려진 셔츠를 출시했다. 당시 폴로는 상류층이 즐기는 스포츠였기 때문에 상류층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폴로가 유명세를 타자 1930년대부터 '폴로'라는 명칭의 옥스퍼드 셔츠를 생산하고 있던 브룩스 브라더스와 법적 분쟁이 일어났고, 결국 랄프 로렌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폴로 랄프 로렌'으로 사명을 변경해야 했다.


1972년에는 폴로 랄프 로렌의 히트작 피케 니트 셔츠가 출시됐다. 워낙 폴로의 피케 셔츠가 유명하다보니 원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원래 피케 셔츠는 라코스테의 작품이다. 다만 당시 라코스테는 세 가지 색상으로만 출시했고, 소재도 폴리에스트르와 면 혼방이었다. 그런데 랄프 로렌은 면으로 된 피케 셔츠를 24가지 색상으로 내놓았고, 원조인 라코스테를 능가하는 인기를 보였다.


폴로 피케 셔츠 [출처 - 폴로]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폴로 랄프 로렌은 상류층이 즐겨입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했다. '국민 브랜드'로 등극한 건 1976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와 1977년작 '애니 홀' 덕이다. 랄프 로렌이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로버트 레드포드의 의상을 제작한 건 맞지만 사실 '애니 홀'에서 폴로 랄프 로렌 의상을 입고 등장한 다이앤 키튼의 경우에는 배우 자신이 연출한 스타일이다. 의상을 제작한 여부와 관계 없이 폴로는 두 영화 덕에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 당시 랄프 로렌은 국민적 인기에 상류층 스타일을 보편화시킨 라인들을 출시해 대중적인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랄프 로렌은 이런 이력들로 미국 패션디자이너 협회(CFDA)에서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 '여성복 디자이너상', '공로상' 등 다섯 개 부분 상을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그를 거쳐간 디자이너들이 존 바바토스, 베라 왕, 톰 브라운 등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미국 패션계에서 어떤 인물로 평가받는지 대변이 될 것 같다.


현재 랄프 로렌은 CEO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지난 2015년 약 48년 만에 스웨덴 대표 SPA 브랜드 H&M 임원 출신의 스테판 라르손을 CEO로 임명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폴로 랄프 로렌을 경영해온 랄프 로렌의 영향력은 여전해 후임 CEO와 마찰을 빚게 됐고, 이로인해 2017년에는 P&G 출신의 패트리스 루비트를 새로운 CEO로 영입했다. 그는 랄프 로렌이 하지 못했던 디지털 세대를 잡는데 주력하고 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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