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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 같은 가상세상 '메타버스'시대 시작됐다 [Big Picture]
2021/02/25  00:05:01  매일경제
3000마일은커녕 옆 동네도 섣불리 못 가는 게 코로나19 시대 미국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미국인 수천 명이 낚시터에서 북적인다. 그것도 한국의 유명 낚시터다. 이용자명(ID) 맥패러다임 씨가 매주 서너 차례 3000마일 떨어져 사는 동생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낚시를 매개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새소리를 들으며 맥주 한잔 같이하곤 한다. 이렇게 모여 어릴 적 추억을 두런두런 나누는 것이 커다란 힐링이라는 게 그의 전언이다. 완벽히 재현된 공간으로 몰입감을 더한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의 힘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체험적 커뮤니케이션, 정보 기술을 이용한 상호작용에 일대 변혁이 불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속화한 변화에 기술 발전이 맞아떨어지며 사회적 커넥션(연결)의 의미가 또 한번 확장되고 진일보하고 있다.

일상이 되어가는 메타버스

한국 업체 미라지소프트가 개발한 '리얼VR피싱'에는 위와 같은 사례가 넘쳐난다. '덕분에 코로나19로 못 본 부모님, 친지들과 자주 만나고 있다'는 감사 인사가 수두룩하다. 가상세계에서의 만남이 전화나 영상통화로는 채우지 못하는 '감성'을 일깨운 덕분이다.

감성은 상호작용한다. 지난해 4월 공연계의 화제는 단연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였다. 그의 라이브 콘서트가 펼쳐진 곳은 '포트나이트'라는 게임 속 가상세계였다. 단순히 영상을 시청만 하는 온라인 공연과 달리, 게임 속 세상에서 참석자들은 실제 공연장에 온 것처럼 현장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콘서트를 즐겼다. UC버클리는 코로나19로 졸업식을 취소하는 대신,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에 캠퍼스를 열고 졸업식을 진행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단초를 보여준다.

온라인 세상에 혁신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현실 너머 또 다른 세상, 메타버스(metaverse)다. 메타버스는 '초월' 또는 '넘어서다'라는 의미의 'meta'와 세상을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다. '3차원으로 구성된 협력적 가상환경'처럼 학계에서 딱딱한 이름으로 불리던 연구대상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성큼 다가선 개념이다. 가상×증강현실(VR×AR)로 대표되는 몰입형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 코로나19로 인한 만남과 연결의 욕구, 여기에 5세대(5G) 같은 통신 속도의 발전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걸쳐 이미 거대한 커뮤니티를 형성한 포트나이트나 마인크래프트는 단면에 불과하다. 일부 게이머나 기술친화적 소수를 넘어 대중의 일상으로 뿌리내릴 기술적, 사회적 필요충분조건들이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다.


가상 공간 `오아시스`를 무대로 흥미진진한 메타버스 세계를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한 장면.

코로나시대가 촉발시킨 새로운 '연결'

코로나19는 역설적으로 메타버스를 통한 소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간 사회의 취약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의학적 한계만이 아니라 소통에 대한 절실함도 두드러졌다. 단절된 환경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연결이라는 본능이 더욱 거세게 꿈틀거렸다. 줌 회의가 성행하고, 모든 기업이 대면 소통의 대체재를 고심하는 것만 봐도 자명하다. 모두가 은둔해야만 하는 코로나19의 세상이 '연결'의 가치만큼은 확실하게 입증해준 셈이다.

새로운 연결에 대한 대중의 갈구를 뒷받침할 기술적 진보도 무르익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앤드루 맥아피와 에릭 브린욜프슨은 저서 '머신 플랫폼 클라우드'에서 'DANCE'가 기술변혁을 이끈다고 내다봤다. 데이터(Data), 알고리즘(Algorithm), 네트워크(Network), 클라우드(Cloud),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하드웨어(Exponentially improving hardware)가 그것이다. 메타버스의 필수 구성요소이자 모두 놀라운 수준의 혁신을 가속화해온 분야다.

정보기술(IT) 혁신은 곧 '연결'로 귀결된다. 기술은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등 물리적으로 떨어진 무언가를 잇는다는 관점에서 연결과 융합의 과정을 통해 진화해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사물인터넷이 상용화되는 등 기본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더 편리하고 나은 '커넥션'을 향한 역사다. 학계 논문에 머물렀던 메타버스가 일상적으로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것 역시 새로운 커넥션을 향한 의지의 발로가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메타버스의 성공은 기존의 디지털이 재현하지 못했던 일상의 연속성을 얼마나 몰입도 있게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상통화는 나온 지 10년도 넘은 기술이지만 최근에야 겨우 제대로 쓰이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불편하다는 거다. 회의 도중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아 서로의 말이 끊기거나 엉킬 때 그 어색함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불편함의 실체는 무엇일까?

시간을 흐른다고 표현하듯 우리의 일상은 끊김 없이 이어진다. 테이프나 LP처럼 보통 아날로그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것들이 이렇듯 연속적이다. 반면 디지털은 이 연속적인 삶을 불연속적인(discrete) 신호로 전환해서 압축하고 전달하고 보관한다. 기술의 발전은 그 분절의 정도를 사람이 여간해서는 인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감소시켰지만,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의식 중에도 우리가 그 분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술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감을 통한 자극이 최대한 연속적으로 전달돼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다. 메타버스를 앞당기는 도구로 몰입감과 감성이 동원되는 VR와 AR 기기를 꼽는 이유다. 스크린의 끝에서 생기는 단절을 넘어 내 눈이 닿는 모든 공간을 연속적으로 구현한다. 끊김 없는 빠른 통신 인프라스트럭처도 필수다.

원격업무부터 의료·교육까지 전방위 변화

기업에는 메타버스의 가상 사무실이 차세대 업무환경으로 꼽힌다. 혼합현실 기술을 이용한 원격 업무협업이 실제 대면환경을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진단했다.

산업적으로는 VR와 AR 기술에 집중이 예상된다. 컨설팅 기업 PwC는 2030년까지 VR와 AR 분야가 세계 경제에 약 1조5000억달러의 부가가치를 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2025년 관련 시장 규모가 95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 추산했다. 이미 이런 움직임은 전 산업계에 걸쳐 포착되고 있다. 의류 판매, 여행, 부동산 업계의 VR 적용 사례는 이미 심심찮게 발견된다. 생산 현장도 마찬가지다. 신차 디자인(종목홈) 과정에서 VR를 통해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외형과 디자인을 사전 리뷰한다. 이를 통해 막대한 돈이 드는 시제품 제작 비용을 절감한다. BMW나 재규어랜드로버가 이미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교육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역사의 현장을 재현한 메타버스로 안내해 몰입형 역사 수업이 가능하다. 피라미드에 들어가 미라를 만져보며 이집트 역사를 배우고, 거북선에 올라 이순신 장군이 진두지휘하는 명량해전의 주요 전술을 배우는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인터넷 강의의 시대가 저물고 마치 1대1 과외와 같은 몰입형 교육의 시대가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19로 더 관심이 쏠리는 분야는 기업 근무형태에 몰고 올 변화다. 재택근무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기업문화 유지의 대안으로 VR가 한몫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물가가 비싼 실리콘밸리 기업의 경우 이 같은 방법으로 원격근무의 단점을 해소한다면 지역을 넘어 국가와 상관없이 인재를 모을 수 있고, 사무실 고정비 같은 자본지출 역시 절감할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가상환경과 현실을 혼합한 다양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혼합현실 기기인 홀로렌즈를 이용해 브라질 의료진이 프랑스와 미국의 의료진과 실시간 협업하며 관절경 수술을 진행한 사례를 발표했다. 3개 대륙에 흩어져 있는 3명의 의사가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해, 마치 한 공간에서 함께 집도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한국만의 장점으로 기회 잡아라

이처럼 업계 선두기업들이 연구에 박차를 가할수록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확산은 증폭된다. 메타버스 구현의 밑거름이 되는 VR와 AR 분야가 스마트폰에 이어 미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주도할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으로까지 점쳐지고 있는 까닭이다.

변화는 기회다. 산업적으로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VR와 AR의 핵심 구성요소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다. 여기에 이 모든 것을 원활하게 뒷받침해줄 통신 속도가 중요하다. 대부분 이미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하드웨어적으로는 VR기기뿐만 아니라 관련 시뮬레이터,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도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초기 단계인 만큼 아직 대형 업체가 뛰어들어 대량생산하는 체제는 아니다. 다만 첨단 기술이 집약되기 때문에 시장 성숙기에는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기기 양산의 경험이 있는 기업이 업계를 주도할 것으로 점쳐진다. 효율성과 수율로 대표되는 한국의 제조 경쟁력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하드웨어를 넘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종착지는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의 조화가 이뤄진 생태계(에코시스템)다. 문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최근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만한 강점을 지닌 분야로 꼽힌다. 이것이 대규모 다중사용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같은 분야에서 한국 업체들이 쌓아온 높은 수준의 그래픽 구현 능력이나 인프라 관리 역량과 만나면 메타버스 속 콘텐츠와 플랫폼 구축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품질이 높을수록 커지는 대용량의 콘텐츠를 빠르게 전송할 역량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기와 서버 간 통신이 지연 없이 아주 빠르게 처리되는 수준이어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세계 최초 5G 서비스를 시작할 만큼 빠른 속도와 기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최적의 토양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미래 기술은 뛰어난 기기와 잘 갖춰진 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의 혁신을 꽃피우면 오늘의 기술이 된다. 그리고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자리 잡는다. 최근 여러 유니콘을 포함해 콘텐츠와 기술 영역에서 혁신을 이끄는 우리 기업이 쉼 없이 나타나는 시대다. 제조업의 압도적 경쟁력을 무기 삼아, 이러한 혁신 역량을 가미하는 큰 전략이 있다면 대한민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니다.

메타버스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상호작용하고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지속적으로 도전을 던지고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우리의 경쟁력이 빛을 발할 또 다른 기회가 열리고 있다.



[정기현 페이스북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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