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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교육청들의 반란, 교육개혁의 시작
2018/12/07  00:06:19  매일경제

교육계는 올해도 시끄러웠다. 해마다 반복되는 수능 논란. 불수능이든 물수능이든 어차피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절대평가·상대평가, 정시·학종 프레임 속에서 공론화까지 갔지만, 현 수능과 내신 시험문제에 패러다임적 변화가 없는 한, 뭘 선택해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역량을 못 기른다. 공정도 타당도 못 잡고 갈등만 고조시키며 교육개혁은 요원해 보였다.

이런 와중에 지역 교육청들은 조용히 반란을 추진해 왔다. 시작은 작년 여름 수업·평가혁신 방안으로 국제바칼로레아(IB)를 공교육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는 서울시교육청의 연구였다.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1월 IBO(IB 본부)에 IB를 한글화하여 공교육에 시범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첫 공문을 보냈다. 올해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IB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제주교육청, 충남교육청, 대구교육청에서 완전히 자발적으로 30명의 대표단이 구성돼 참여했다. 구한말 신사유람단처럼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때 제주교육감, 충남교육감을 비롯한 한국 교육청 대표단이 IBO 회장단과 공식 회담을 하고 IB 한글화를 정식 요청했다.

스위스에 본부, 영국에 채점센터, 싱가포르에 아시아태평양본부가 있는 비영리재단 IBO는 50년간 검증된 공신력 있는 교육과정과 대입체제를 운영해왔는데, 처음엔 한글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5월 하순 제네바에서 열린 이사회에 IB 한국어판 개발 의제가 상정됐을 때 무관심하던 이사들이 한글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북·미정상회담 관련 뉴스가 연일 유럽 언론에도 등장하던 시기라 '작금의 세계평화는 한반도에서 시작하지 않느냐, 이런 시기에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지 않는 세계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의 씨앗을 한반도에 심는다면 이는 IB가 추구하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아니겠냐'는 설득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IBO 이사회 권고에 따라 IBO와 교육청들은 7~9월 동안 한국어판 IB의 공교육 시범도입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수행했고, 9월 26일 제주교육감과 대구교육감은 싱가포르에서 시바 쿠마리 IBO 회장과 총론 합의 회담을 했다. 이후 교육청들과 IBO는 어떤 과목부터 한글화할지, 교원 연수는 어떻게 할지, 채점관 양성은 어떻게 할지 등 각론을 협상하고 있다. 조만간 공식 협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IB 한글화는 단순히 시험문제 번역이 아니라, IB 대입시험을 한글로 치르고 엄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IB 수업 교원 연수를 하고, 영어판 채점과 동일한 수준의 한글 채점이 가능한 우리 채점관을 양성하며, 시범 학교 이외의 일반 학교 교사들도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의 평가와 수업을 접하게 된다. 대한민국 교육혁명의 불씨가 될 것이다.

IB의 초·중학교 프로그램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프레임워크라서 우리 국가교육과정과 충돌할 일이 없다. 고등학교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대입시험과 교육과정이 있는데, 2009년부터 우리의 '초중등교육과정 행정규칙'에 고등학교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교육과정이나 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 이 경우 시도교육청이 정하는 지침에 따른다"는 문구가 있어서, IB 도입이 이미 제도적으로 가능하다. 대입도 수능 최저 기준 요구 없는 수시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 이미 서울대를 비롯한 20개 주요 대학의 수능 최저 기준 없는 전형이 평균 40%가 넘는다. 초·중·고 공교육의 롤모델 형성을 목적으로 IB를 공교육에 먼저 도입한 일본에서는 최근 대학에서 IB 전공 교수 채용까지 시작했다.

전면 도입이 아닌 일부 학교만 시범 도입이지만, 그 영향은 일파만파일 것이다. 공립학교를 다니는 옆집 아이가 다른 종류의 숙제를 하고 다른 종류의 시험을 보는데도 국내 대학을 잘 갈 수 있다는 사례를 지켜보면, 수능과 학종 프레임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입시와 내신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제주교육청과 대구교육청의 IB 예산이 마침내 통과됐다. 궁극적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며, 대한민국 교육개혁,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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