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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교적 수사를 통해 본 한미 동맹의 현주소
2019/08/26  00:06:12  매일경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 "문제 검토 과정에서 미국 측과 수시로 소통했다." 지난주 우리 정부가 밝힌 입장이다. 이 말만 보면 한일 관계가 나빠져도 한미 관계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 같다. 정말일까.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갱신을 보류한 데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strong concern and disappointment)을 표한다." "미국은 반복해서 문재인 정부에 이런 결정이 미국과 동맹국들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말들이 동시다발로 나오는 것일까. 외교적 수사(rhetoric)를 넘어 우리 외교·안보와 한미 관계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까 염려된다.

외교에서 수사가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국제 관계의 특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번이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국가 이익에 중대한 손실이 따르기 때문에 정부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며 조심스럽게 표현한다. '협의를 했다'는 말은 '합의가 없었다'는 뜻이고, '이해한다'는 말은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같은 이유로 동맹국 간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실망과 우려다. '실망했다'는 것은 '그런 선택을 할지 몰랐다'는 의미고, '우려한다'는 것은 '앞으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더구나 '강한'이란 표현을 앞에 붙인 건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미 동맹이 상당한 수준의 불협화음에 직면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외교적 수사가 외교정책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확한 문제 인식과 올바른 대응책 수립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구조적 이익을 먼저 보아야 한다. 그래야 외교적 수사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추진해 왔다. 미국의 한반도 안보 공약에는 주일미군과 기지들을 통해 전개될 증원 전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위협에 대응함에 있어 늘 일본을 고려해 왔다. 일본은 이러한 미국 측 이해를 잘 활용하며 때론 협조하고 때론 자신들 이익을 극대화해 왔다.

한국은 어떠한가.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그것도 핵 위협이 존재하는 한 혼자서 북한을 막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한미 동맹이 불가결한 이유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방위비 분담이나 국외 파병 등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아낌없이 지원해왔다. 한일 관계가 경색되어도 한·미·일 안보 협력을 꾸준히 발전시켜 온 것 역시 미국 때문이지 일본이 좋아서 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일방적인 지소미아 종료로 인해 한국은 미국의 지역 전략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한일 관계를 넘어 한미 동맹 문제로 볼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을 악화시킨 것이 아닐까 의심할 것이다. 미국 국무부 발표 자료에서 '한국 정부'가 아닌 '문재인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행위다. 상대국 정부를 호칭할 때는 존중을 표하는 의미에서 정부 앞에 국가 이름을 붙인다. 특정 행정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오히려 이례적이다. 국가의 정체성과 행정부의 정체성을 분리해서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이 기회에 한미 동맹 관계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는 설명은 실망을 넘어 우리 앞날을 걱정하게 만든다. 외교적 수사가 지나치면 국민을 속이는 일이 된다. 일부러 현실에 눈을 감는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상황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것인지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의 위기를 막고, 뒤돌아 웃고 있을 누군가에 똑바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솔직한 외교가 시급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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