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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 의약품에도 점자표시 해주세요"
2020/12/01  00:05:37  이데일리
- 의약품·식품류 등 점자표기 없어 시각장애인 불편
- '생필품' 점자 표기...일부 '캔 음료'에 그쳐
- "하나 둘씩 동참해요"...자발적으로 점자 표기하는 기업 등장
- QR코드 활용한 음성전환 서비스도 있어... "시각장애인 권리 강화 필요"

“음료수에는 '음료'라고만 점자표기가 되어 있어요. 그 음료수가 어떤 종류이고 맛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죠. 과자나 라면은 아예 이마저도 없구요. 시각장애인이 아직까지는 혼자 쇼핑을 할 수도, 내가 구매한 제품의 정보나 유통기한을 알 수도 없다는 뜻이 되겠죠. ”(시각장애인 한혜경(25·여)씨)

“약의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없으니 괜히 잘못 먹었다가 위험해질까봐 아예 못 먹었던 적이 있어요. 남들과 동일하게 기본적인 정보 몇 개만 알면 적절한 시기에 원하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은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이 참 많죠.”(시각장애인 김한솔(27·남)씨)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필수품을 구매하는 과정의 불편함이 지속되고 있다. 일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들의 노력으로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한씨는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식료품에는 점자 표기가 없어 제품명이나 유통기한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것.

그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의 종류나 유통기한 등의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김씨도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매 순간 불확실하게 무언가를 해나가야 한다"며 "매일을 불확실함 속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을 참 순간순간마다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확인한 캔 음료에는 '음료'(왼쪽)와 '탄산'(오른쪽) 점자 표기가 전부였다. 해당 점자로는 음료의 종류나 브랜드를 확인할 수 없다.(사진=정지윤 기자)


'생필품' 점자 표기...일부 '캔 음료'에 그쳐

실제 마트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점자 표기 상태는 어떨까.

직접 가 본 한 편의점에서는 점자가 표기된 제품은 일부 캔 음료가 전부였다. 캔 음료에 있는 점자마저도 구체적인 제품명이나 유통기한 등의 정보를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캔 음료의 점자가 단순히 ‘음료’라고만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캔 음료의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선택권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국내 대표 음료제조사인 롯데칠성음료는 2017년부터 롯데칠성음료는 캔 음료 위의 점자가 ‘음료’로만 통일되어 있던 것에서 ‘탄산’을 추가해 표기해오고 있다. 해당 내용은 시각장애인을 배려했다는 누리꾼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음료의 구체적인 제품명을 알 수 없다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음료’는 포괄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헷갈릴 수 있어 점자 표기를 ‘탄산’으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캔 음료에만 점자를 표기하고 있다”며 “페트(PET)는 공정 과정에서 점자를 세밀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카콜라 역시 캔 음료에 '음료'라는 점자를 표시하고 있다.

코카콜라 관계자는 "현행법상 점자 표기가 의무는 아니지만 시각장애인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점자를 표기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점자 추가를 위해서는 캔 용기 상단을 덮는 단계에서 음료별로 생산 라인을 중단하고 점자가 적힌 새로운 덮개로 교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교체 작업의 운영 및 관리가 쉽지 않아 보다 다양한 점자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양해 부탁드린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들이 점자 표기에 동참하고 있으나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본 정보는 부족한 상황. 일상에서 흔히 소비하는 과자, 라면 등의 식품은 물론 휴지, 생리대 등의 생필품에서도 점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씨는 “식품의 유통기한 표기가 중요하다”며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생리대의 경우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사용하면 피부 발진 및 간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위험하다”며 유통기한 점자 표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는 제품 유형을 점자로 표기한다. 그림 속 제품 하단에는 영어 점자로 'sun cream(선크림)'이 적혀있다. (사진=닥터지 홈페이지)


"하나둘씩 동참해요"...자발적으로 점자 표기하는 기업들

캔 음료에 이외에도 화장품, 세제, 물티슈 등 자발적으로 판매 제품에 점자를 표기해 시각장애인 배려에 앞장서는 기업들이 있다.

고운세상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는 제품 포장 상자에 점자를 표기해오던 것에서 나아가 올해부터는 제품 용기에도 점자 표기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고운세상 관계자는 “피부 고민을 가진 모든 사람이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용기에 제품 유형을 점자로 표기하고 있다”며 “점자 표기로 일정부분 원가가 상승했지만 시각장애인들도 모두 동일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판단에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존에는 한글 점자로 제품 유형만 기입했으나 다양한 소비자들을 위해 올해부터 영어 점자로 수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비웨이브컴퍼니, 닥터디퍼런트, 록시땅 등의 화장품 브랜드들은 제품에 점자를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체 화장품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점자가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한씨는 "화장품에 점자가 있어 이용에 편리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점자가 한국어였다면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90%에 달하는 점자문맹률과 영어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수를 고려했을 때 과연 이 점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다"고 전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건의만 10년째... “안 되더라도 계속합니다

의약품 및 생필품에 점자 표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수년째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점자 표기가 여전히 부족한 것은 제도적 강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약품의 경우, ‘의약품 등의 안전에 대한 규칙’ 제69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제품의 명칭, 품목허가를 받은 자 또는 수입자의 상호 등은 점자 표기를 병행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법상 제약사의 점자 표기는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인 것.

의약품 점자 표기는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약물 오남용 및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꾸준히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미래통합당 김예지 의원은 의약품 접근성 제고를 뼈대로 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힘쓰는 이들은 정책적 대안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선임연구원은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고 한들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점자표기 의무화'와 같은 내용을 10년째 건의하고 있지만 매번 발의에만 그치고 통과된 적이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난 19· 20대 국회에서 점자 표기 의무화를 담은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되는 상황이 반복된 것. 포장자재 교체 등의 이유로 의약품 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이에 제조사들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것이 이유다.

김 선임연구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발의하는 이유는 해당 사항이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안 된다고 해서 그만두면 결국 사람들에게 잊혀져버리게 된다"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건의를 멈추는 것이라고 여길까 봐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점자 이외에도 QR코드를 이용한 음성 전환 서비스 등 시각장애인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대안은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의 관심 하나하나가 모여서 벽을 깨부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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