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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저성장 한국경제, 일본을 반면교사로

2017/08/13 17:13:40매일경제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필자는 강원도의 시원한 바람을 팔베개 삼아 피서를 다녀왔다. 책 몇 권을 벗 삼아서 말이다. 이번 휴가 때 읽은 책 가운데 필자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책이 있다. 미키타니 히로시 일본 라쿠텐 회장이 고베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경쟁력'이란 책이다. '왜 아버지 세대에는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이 지금은 이렇게 저성장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이 질문이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이었다. 필자도, 아니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지면을 빌려 독자들께 그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미키타니 회장이 던진 키워드는 '경쟁력'이었다. 저성장도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데서 찾았고, 해법 역시 '경쟁력 제고'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비효율을 조장하는 정부 지원 정책 때문에 민간의 경쟁력이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창업하는 비율이 4%인 동시에 기업이 실패할 확률도 4%라고 한다. 일본에서 이처럼 기업이 실패하기도 힘든 이유는 중소기업 구제 정책 등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기업 모라토리엄 정책 때문이다. 2004년 도쿄도청은 1000억엔 투자로 신도쿄은행을 설립하고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에 무담보대출을 지원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던 이 은행은 3년 만에 부채가 1000억엔에 육박했고, 400억엔의 공적자금이 추가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항공(JAL) 역시 잘못된 모라토리엄 정책 때문에 회생했다고 미키타니 회장은 진단했다. 파산하게 두었다면 저가항공사가 출현해 항공료가 낮아지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비효율적인 일본의 노동시장 역시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았다. 경직적인 고용시장을 상징하는 종신고용제가 청년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경쟁력 향상을 꾀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서울시향을 꼽았다는 점이다. 종신고용제의 도쿄필하모닉과 달리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고용을 유연하게 하여 젊은이들에게 입단의 길을 터줬고, 그 결과 오케스트라 국제순위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국가 경제구조 전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가 최저 비용으로 최상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할 수 있는 핵심성과지표(KPI)를 설정해야 한다고 미키타니 회장은 주장한다. 정부서비스 지출 비용을 국내총생산(GDP)의 20% 정도로 낮추고, 법인세를 인하해야 하며, 실적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절대 자를 수도 없는 종신고용제가 적용되는 공무원 수를 감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지방정부가 재정난에 빠지면 경찰 인력마저 해고한다는 사례를 들면서 말이다. 또 관료 주도의 성장을 그는 경계한다. '관료가 주도하면 무조건 잘되고,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관료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환상'이 바로 일본병이라는 것이다. 경제산업성의 갈라파고스식 일본 기업 보호 정책이나 뿌리 깊은 관료 중심의 국가자본주의 탓이라는 지적이다. 일본 속담에 '모든 개는 집에서 사자다'란 말이 있다고 한다. 세계로 눈을 돌리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다가는 기업들이 '내수시장에선 사자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강아지가 된다'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에서 주어를 '일본'에서 모두 '한국'으로 바꿔보자. 그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요즘 우리나라 상황이다.

최근 이스라엘 요즈마펀드의 한 고위 임원을 만난 적이 있다. 창업 지원을 주 업무로 하는 그가 관찰한 한국의 문제점은 세 가지였다. 대기업 규제나 금융 규제 등 과도한 규제, 창의성을 길러내지 못하는 틀에 박힌 교육 제도, 창업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신뢰의 부재. 그의 지적 역시 우리나라 기업 환경의 경쟁력에 발목을 잡는 것들이었다. 문재인정부가 집권 초 드라이브를 걸며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강한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기엔 최적의 타이밍이다. 부디 저성장 타개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이정표엔 '경쟁력'이란 세 글자도 새겨져 있길 바라본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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