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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 강국` 일본이 `방역 후진국` 전락한 진짜 이유는?

2020/02/22 06:01:12매일경제
[한중일 톺아보기-5] ※톺아보기란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본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중일 톺아보기는 동북아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소식까지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일본은 '방재 강국'으로 불립니다.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를 자주 겪다보니 구축해온 시스템과 노하우가 탁월합니다. 전 세계 지진의 10% 이상이 일본에 집중되는 데 비해 피해가 적은 것은 면밀한 대책의 결과입니다. 일본은 방역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내놓은 보고서는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의 경우 일본의 방역 기술이 한국보다 최대 7년이나 앞선 것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은 사스나 메르스 때 주변국들과 달리 거의 피해가 없었다"며 "방역체계도 자국이 최고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타 공인 '방재·방역 강국'인 셈이죠.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국내외에서 '최악'이었다며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 등 해외 언론은 일본의 위기관리 능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고 캐나다, 홍콩, 이탈리아 등은 전세기를 파견해 자국민들을 대피시켰습니다. 이는 많은 나라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본의 대응을 못 미더워한다는 말입니다. 지난 1월 15일 첫 확진자 이후 현재(2월 22일)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에 있는 이들을 포함하면 확진자 수는 8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도 3명이나 발생했습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는 '떠다니는 미니 우한' '코로나 배양접시'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죠. 당초 일본 정부는 사태 초기 "일본의 의료·보건 시스템에선 걱정없다"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됐습니다.

◆느슨한 초동대처에 뒷북 대응먼저 일본 정부가 확진자 발생 초기 취했던 느슨한 초동 대처가 지적됩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28일 코로나19를 '지정 전염병'으로 지정하는 시행령을 결정·공포했지만, 실제 시행된 시점은 2월 7일로 열흘 이상 지난 후였습니다. 또한 이때까지 코로나19를 '1류 지정 전염병'보다 낮은 단계인 '2류 지정 전염병'으로 지정해 감염 의심자들의 입국 제한조치를 실시하지 않았죠. 이와 관련해 재무성 관료 출신인 다카하시 요이치 가에쓰대 교수는 "전염병 대응은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이 같은 조치가 1월 28일에 선제적으로 취해졌다면, 크루즈선이 일본에 입항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월 15일 후생노동성 장관은 승선 인원 모두에게 바이러스 검사를 받게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이것도 당초 전원 검사는 실효성이 없다고 버티다 나중에서야 방침을 바꾼 것입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와 비교되는 사례로 홍콩에 입항한 '월드드림호'가 있습니다. 홍콩 당국은 1월 24일 광둥성에서 내린 '월드드림호' 승객이 감염됐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승선했던 승무원 1800명 전원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매뉴얼'에 강하지만 임기응변 약해 흔히 일본을 '매뉴얼 사회'라고 합니다. 일본은 상정 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매뉴얼을 갖추려 합니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법과 회사·학교에서의 복장, 재난 때 물품 지원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규정들이 있고 여기에 따라야만 합니다. 매뉴얼이 없거나, 있어도 무시하는 한국과 다른 점입니다. 매뉴얼 완비는 안정적이고 정확한 대처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일처리에 예외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사회적으로 보다 투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뉴얼에 없거나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가 문제입니다. 매뉴얼을 찾느라 대응이 늦거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해외 구호물자가 도착했지만 '처리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절박한 상황인 주민들에게 제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해외 의료진 역시 관련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주민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태풍 피해를 입은 가나가와현의 한 마을에선 수돗물 공급이 끊겨 급한 대로 자위대가 급수차를 파견했지만 매뉴얼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착한 물이 전부 버려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매뉴얼에 집착하다보니 유연한 대응이 어려워지는 것이죠. 매뉴얼에 없는 건 안 하려다보니 매뉴얼 이상의 결정이 필요할 때 책임을 미루고 대응이 늦어지는 등 관료주의나 보신주의로 변질될 위험도 있습니다.

◆어긋난 '미즈기와' 대책...권력집중 따른 부작용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했다고 하는 '미즈기와(水際)' 방역대책이란 '해상봉쇄'를 의미합니다. 감염된 사람들의 진입을 막아 감염원을 원천 차단하는 것으로 역사가 오래된 정책입니다. 그런데 진입을 차단한 것까진 좋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제대로 된 후속책이 없었던 거죠. 사람들을 밀폐된 공간에 방치하면서 피해가 커졌고, 되레 집단 감염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에릭 루빈 하버드대 면역학 교수는 "폐쇄된 환경인 선상은 전염병 확대에 완벽한 장소다. 승선 시간이 길고 승객의 움직임이 많기 때문에 비행기나 기차보다 감염 진행이 쉽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2일 아베 총리는"보다 포괄적이고 기민한 미즈기와 대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국민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정조회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려한 데다 미즈기와는 실패했다"며 아베 내각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번 방역 실패는 권력 집중에 따른 부작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 재집권 후, 총리관저는 전권을 틀어쥐고 관료사회를 쥐락펴락해왔습니다. 총리관저 규모와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각 부처에 있던 정책수립 기능을 총리관저에서 총괄하는 체제로 바꿨습니다. 간부급 관료 인사권도 각 부처에서 총리관저로 옮겼습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총리 관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잘해줬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관료들은 관저로부터의 지시만 기다리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에 일본이 전세기를 우한에 파견할 때도 관저에서 물밑 조정을 하고 주무부처인 외무성은 사후 통보만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부 고위간부는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적 사고에 관료가 관저의 인사권에 얽매여 예전 같지 않다. 어디든 권력이 집중되면 이런 폐해가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외조부처럼…'올림픽 업적' 의식한 아베 이렇게 된 데에는 올림픽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는데 집착한 결과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일본 사정에 밝은 한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일본의 부활을 알렸듯이, 자신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업적으로 남기려는 욕심이 앞서다 무리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습니다. 올림픽에의 영향을 너무 의식한 총리 관저의 욕심이 화를 키웠다는 분석입니다.

아베 내각은 최근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과 소비세 인상 여파로 지지율 하락에 고전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4월 예정된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일과 7월 도쿄올림픽은 분위기를 전환하고 지지율 반등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전염병이 발생한 겁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전염병 사태가 터졌지만 내각 고위관료들은 내심 위기관리 능력을 어필해 국면 전환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응실패는 지지율을 한층 더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재무성 관료 출신인 다카하시 요이치 가에쓰대 교수는 "이번 대응에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며 "아베 정권은 그동안 지진과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응엔 신속했는데, 이번엔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보건안보 리스크도 '정치' 매뉴얼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일본의 이번 사태는 정치적 고려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 초래한 인재(人災) 입니다. 크루즈선에 있는 1000명이 넘는 자국민의 안전은, 일본의 대외적 이미지 그리고 올림픽이란 국가적 이벤트보다 후순위에 밀렸습니다. 비영리 싱크탱크 NTI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건강안전센터가 내놓은 '2019 글로벌 보건안전 지수' 에 따르면, 일본의 보건안전 태세는 전체 21위로, 더 대비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9위로 미국, 덴마크 등과 함께 가장 잘 대비된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한국의 높은 순위는 2015년 메르스 사태로 크게 곤욕을 치른 경험 덕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선 이번에 한국 방역체계의 우수함이 입증됐으며 사태가 곧 종식될 거라는 낙관적 시각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며칠새 국내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고 사망자까지 발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은 물론 여당 의원들이 한국의 대응을 자화자찬하자마자 이 같은 상황을 맞았습니다. '글로벌 보건안보 지수'는 분명 한국의 보건방역 역량을 최상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정치 시스템과 정부의 효과성에 대한 평가가 포함된 항목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치 시스템과 정부의 효과성을 반영한 '리스크 환경' 항목에서 한국은 27위로 체코,슬로베니아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곧 한국에 보건안보 위험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의료보건 태세등 과학기술적 영역 보다 정치의 영역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지난 18일 대한의사협회는 중국 전역으로 입국제한 조치를 확대하고 위기경보의 상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불필요한 조치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에 공중보건 문제에 있어선 정부가 정무적 판단보다 현장과 전문가들 의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았습니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코로나19는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 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자명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우선하는 건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정치적 논리가 앞설 때 어떻게 되는지, 이웃 국가인 일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되지 않을까요.

[신윤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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