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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공포를 집어삼킨 '불멸의 유혹'

2020/03/26 12:59:09아시아경제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장면. 조나단 하커 역의 이충주와 뱀파이어 슬레이어 [사진= 오디컴퍼니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올백 머리, 검은 연미복과 망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큘라 백작의 전형은 미국 영화감독 토드 브라우닝(1880~1962)이 1931년 만든 영화 '드라큘라'에서 완성됐다. 브라우닝 감독은 앞서 만들어진 여러 드라큘라 연극을 참고했다. 영화 '드라큘라'가 크게 흥행하면서 드라큘라 역을 맡은 배우 벨라 루고시(1882~1956)의 모습이 드라큘라의 전형으로 굳어졌다.


영화 '드라큘라'의 시작은 흥미롭다. 영화 제목을 보여주는 첫 장면에서 흐르는 배경음악은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의 '백조의 호수'다. 브라우닝 감독이 처음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백조의 호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제작사 유니버설은 세월이 흐른 뒤 '백조의 호수'를 배경음악으로 집어넣었다. 왜 하필 '백조의 호수'였을까.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지크프리트 왕자는 악마의 저주에 걸린 오데트 공주를 사랑한다. 하지만 악마의 딸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하고 오딜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 발레리나는 오데트와 오딜, 1인 2역을 한다. 오데트를 연기할 때는 흰색 튀튀(발레리나가 입는 치마)를, 오딜을 연기할 때는 검은색 튀튀를 입는다. 오데트를 연기할 때는 청순해야 하고, 오딜을 연기할 때는 관능적이어야 한다. 발레리나 한 명이 양면성으로 왕자를 현혹하는 것이다. '드라큘라'에서도 여주인공 미나, 미나의 친구 루시는 귀족과 사악한 흡혈귀의 양면성을 지닌 드라큘라 백작에게 현혹된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장면. 드라큘라 역의 류정한(오른쪽)과 미나 역의 린지(임민지) [사진= 오디컴퍼니 제공]

2010년 영화 '블랙 스완'은 상반된 두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 주역 발레리나의 고뇌를 잘 보여준다. '블랙 스완'에서 여주인공 니나(내털리 포트먼)는 발레단 단장 토마스(뱅상 카셀)에게서 오데트를 연기할 때면 완벽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오딜을 연기할 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백조의 호수' 오디션 장면에서 토마스는 니나에게 내면에 있는 흑조를 보여달라며 외친다. "통제하지 마. 우리를 유혹해. 왕자뿐만 아니라 무대 전체, 관객과 세상 전부를. 마치 거미줄을 친 거미처럼."


토마스 단장이 지금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6월7일까지)인 뮤지컬 '드라큘라'를 본다면 만족하지 않을까. 뮤지컬 '드라큘라'는 관능적이다.


극 초반 드라큘라 백작의 저택 장면이 압권이다. 미나의 연인 조나단 하커가 저택의 침대 위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무대 양옆과 뒤에서 등장한 드라큘라 백작의 뱀파이어 슬레이어 셋이 꿈틀거리며 하커에게 다가간다. 세 뱀파이어 슬레이어는 하커의 피를 노린다. 셋이 침대에 올라 하커를 탐닉하며 '포에버 영(Forever Young)'이라는 제목의 넘버(뮤지컬 노래)를 부른다. "내 혀끝에 붉은 입술/우윳빛 그대 살결 (중략) 상상 못 할 짜릿한 꿈/널 사로잡아줄게/끝이 없는 쾌락의 밤/온몸을 핥아주지/(후략)."


넘버 가사에서 엿보이듯 이 장면은 다분히 성적 행위를 연상케 한다. 하커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세 뱀파이어 슬레이어에게 농락당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드라큘라 백작에게 물린 루시와 미나도 흡혈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잇달아 관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컬 '드라큘라'가 가장 강력하게 관객을 유혹하는 방식이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장면. 드라큘라 역의 김준수 [사진= 오디컴퍼니 제공]

원래 드라큘라는 다분히 성적인 코드가 녹아 있는 캐릭터다. 드라큘라가 여성의 목덜미를 무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1847~1912)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1897년 영국에서 출간됐다. 당시는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 후기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엄격한 도덕주의를 추구했다. 이에 대한 반발 심리가 소설의 인기를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있다.


뮤지컬 '드라큘라'가 관객을 유혹하는 또 다른 매력은 4중 회전 턴테이블 구조로 만들어진 무대다. 무대는 수시로 회전하며 드라큘라 백작의 성, 미나의 거실과 침실, 공동묘지와 지하 납골당 등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흐르는 13개 배경을 숨 가쁘게 보여준다. 특히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 장면에서는 전체 무대가 큐브 퍼즐을 맞추듯 현란하게 움직인다. 관객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다. 드라큘라 퇴치에 나선 반 헬싱 교수가 미나의 침실에서 드라큘라와 마주쳐 격돌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초연됐다. 2004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스웨덴, 오스트리아, 영국,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초연, 2016년 재연됐다.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장면. 드라큘라 역의 류정한(왼쪽)와 미나 역의 린지(임민지) [사진= 오디컴퍼니 제공]

원작 소설은 4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무대 공연이 으레 그렇듯 원작 소설의 방대한 양을 무대로 모두 옮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대 공연에서는 원작 소설의 일부 내용이 생략 혹은 축약된다.


뮤지컬 '드라큘라'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극이 시작되는 정신병원 장면에서 렌필드라는 이름의 환자가 등장한다. 브라우닝 감독의 영화에서는 렌필드가 드라큘라 백작의 저택에 방문했다가 흡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흡혈당하는 장면이 생략되고 애초에 흡혈된 인물로 등장한다.


이런 생략과 축약 때문에 '드라큘라'는 초연 당시 이야기의 개연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작진은 재연 때 대본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세 번째인 이번 공연에서는 2016년 재연 당시 대본을 기본 골격으로 삼되 세세한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쳤다. 제작진은 드라큘라의 아내였던 엘리자벳사의 초상화를 추가하고 이와 관련한 대사들을 보강해 드라큘라와 미나의 이야기를 더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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