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뉴스

의무기록지 고치고 의사끼리 입 맞춰··· 檢은 불기소 처분 [김기자의 토요일]

2020/05/30 10:00:25파이낸셜뉴스
28일 김선웅 원장 명예훼손 5차 공판서
피고인 측 신청 증인 '충격폭로' 이어져
의무기록지 '연필'로, 증거조작 '셋업' 표현
불법 만연에도 "檢이 기소 않아 처벌 無"


[파이낸셜뉴스] 한국에서 손꼽히는 성형외과에서 이뤄진 충격적인 불법행위가 법정에서 언급됐다. 수술이 잘못돼 환자가 깨어나지 않자 고용의사에게 병원 측 과실이 없는 것처럼 의무기록지를 조작하게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들은 이 병원에서 사고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의사들에게 볼펜 대신 연필로 의무기록지를 작성케 하고, 수술실에 타이머를 두고 수술시간을 단축하도록 압박하는 등 정상적인 병원에서 보기 힘든 의료행위가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법제이사로 지난 6년여 간 ㄱ성형외과를 비롯한 한국 성형외과들에서 벌어진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해온 김선웅 원장. 김 원장은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ㄱ성형외과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선웅 원장 제공.

■쏟아진 충격 증언에 방청석은 '아연실색'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배성중 판사는 28일 오후 4시부터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법제이사에 대한 5차 공판을 속개했다.

김 원장은 2018년 8월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인 ‘성형코리아’에 ‘2006년 이후 ㄱ성형외과에서 5~10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유령수술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무과실 마취사고로 조작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글을 게시했다 고발당해 지난해 9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공판에선 2014년 ㄱ성형외과에서 이뤄진 유령수술 실태를 공익제보한 이 병원 봉직의사 출신 조모씨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차상면 전 회장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약 1시간 40분가량 이어진 신문에서 언급된 내용에 방청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먼저 증인석에 앉은 조씨는 2013년 12월 이 성형외과에서 쌍꺼풀과 코수술을 받고 뇌사상태에 빠져 사망한 여고생 고 장모양 사건과 관련한 증언을 이어갔다. 당시 집도의였던 조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처벌받은 바 있다.

조씨는 ‘환자였던 장양이 깨어나지 못해 위급한 상황임에도 원장 유씨가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을 1시간가량 지연시켰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조씨는 “당시 저는 전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며 “병원장이 건의를 묵살했나”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28일 오후 속개된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법제이사에 대한 명예훼손 공판에서 증인들이 ㄱ성형외과와 관련한 충격적인 증언을 쏟아냈다. 이 병원 봉직의로 일한 공익제보자는 증언대에 서 역시 이 병원에서 '유령의사'로 근무한 한 치과의사가 간호사에게 '나는 기계, 의사라고 부르지 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걸 들었다고 증언했다. fnDB

■"나는 기계, 의사라고 부르지 마라"

유 원장이 119 신고 1시간 전에 환자가 깨어났던 것처럼 기록지 작성을 조작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조씨는 “(녹취록에서) 유 원장이 ‘깨우기 시작한 걸로 하고, 1시간 전에 일어난 것처럼’이라고 말한 게 무얼 의미하나”는 질문에 “9시 40분에 전원하는 게 맞는데 10시 40분에 119를 불렀으니 1시간 이상 전원지연 시간을 맞추려고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렇게 시간과 상황을 조작하면 마취약 과민반응 정도로 처리할 수 있나”는 질문이 나오자 조씨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과실이 없다, 우리가 어차피 셋업을 해놓은 상태잖아’라고 원장이 말한 건 무슨 뜻인가”라고 묻자 “의무기록지는 우리가 다 셋업을 해놓은 거니까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병원에서 의무기록지를 연필로 쓰도록 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볼펜으로 쓸 경우 고치기 어려워 처음부터 수정이 가능한 연필로 작성토록 했다는 것이다. 원장 유씨가 ‘볼펜으로 쓰지 말라’는 취지로 발언한 녹취내용에 대한 질문에 조씨는 “연필로 써야 나중에 고치기 쉽기 때문에 연필로 많이 쓰도록 했다”며 “일반적으로는 볼펜으로 쓰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 사고로 유 원장이 어떤 처벌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검찰에서 기소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장양이 사망한 뒤 의사회 차원에서 이뤄진 조사와 조씨 등 공익제보자들의 제보를 통해 ㄱ성형외과에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한 정황이 상당부분 드러났음에도 검찰이 이를 제대로 기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조씨가 “(ㄱ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을 한) 치과의사가 조무사에게 ‘나는 기계’, ‘몇 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 ‘나를 의사라고 부르지 마라’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언급하자 방청석에선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조씨에 이어 증인석에 앉은 차 전 회장은 검찰이 사건을 충실히 기소하지 않은 사실을 증언해 충격을 던졌다. 차 전 회장은 ‘당초 의사회가 유 원장을 상해죄로 고발했지만 검찰이 이를 재산범죄로 축소 기소한 사실’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처음 환자와 상담한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수술한 것을 검사는 (어쨌든) 의사가 수술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 증언이 나오자 방청석에 앉은 시민 일부는 화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 출신으로 한국 성형외과의 '유령수술' 실태를 고발해온 김선웅 원장(왼쪽)이 지난달 24일 재판에 참석한 지지자들에게 문제점을 역설하고 있다. 김 원장 곁에 '권대희 사건' 유족 이나금씨도 함께 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유령수술·공장식수술 피해자 공판정 메워

이날 공판정은 성형외과 수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여럿 찾아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일부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공판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공판을 지켜본 이나금씨(60·여)는 “내 아이는 '유령수술'과 '공장식 비동의 동시수술'의 피해자가 되어 하늘나라로 갔지만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들이 계속 희생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이 자리에 왔다”며 “판사가 피고인 김선웅 원장에게 ‘유령수술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걸 알고 있고 닥터 벤데타 영상까지 직접 봤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ㅈ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숨진 고 권대희씨 어머니로, 검찰이 의료진에 쟁점이 된 의료법 위반 혐의를 불기소하자 이달부터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권씨 수술 당시 병원은 원장이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과 달리 수술 일부만 집도하고 자리를 비웠고, 경력이 일천한 신입의사와 마취과 의사도 동시 진행된 수술 3건을 위해 수술실을 오가는 등 ‘공장식 수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권씨가 치사량을 훌쩍 넘는 3500ml의 피를 쏟고 위험한 상황에 놓였음에도 간호조무사 혼자 수술실에서 권씨를 지혈한 시간이 35분여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살인이나 상해, 사기는 물론 핵심으로 지목된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조차 기소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경찰이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감정기관 수곳도 간호조무사의 수술 중 지혈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감정회신을 보내왔지만 담당검사가 이를 뒤집어 ‘봐주기 수사’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본지 2월 1일.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전문감정과 정반대 결론... '봐주기 수사' 의혹’ 참조>

권씨 유족은 이에 불복해 법원에 검찰 기소의 당부를 가리는 재정신청을 접수한 상태다.

한편 권씨 수술 당시 ㅈ성형외과에서 이뤄진 ‘비동의 공장식 수술’은 ㄱ성형외과 등에서 이뤄진 ‘공장식 유령수술’의 진화형으로, 집도의가 수술과정에 일부 참여해 법리상 사기 혐의를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검찰이 먼저 발생한 불법행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탓에 더 많은 피해가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김성호 기자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하겠습니다.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줄달기 목록을 불러오는 중..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뉴스검색

검색 폼 실시간속보

한줄달기 많은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