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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2020/06/02 15:01:26매일경제
[허연의 아포리즘 81]
#194스티브 잡스가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처음 출시했을 때 광고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광고 후반부에 나오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었다.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흡사 멋진 신세계(종목홈)를 예감하는 듯한 이 구절은 휘트먼의 시 구절이다. 이 시는 영화에서 먼저 사용됐다.

피터 위어 감독의 1987년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엄숙한 기숙학교에 자유분방한 키딩 선생이 부임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키딩 선생은 규율에 묶여 웃자란 콩나물처럼 병들어가는 학생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은 책상 사이에 쪼그려 앉아 '모여봐 모여봐' 하면서 학생들을 부른다. 키딩은 은밀한 비법을 전수하듯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때 나오는 시가 휘트먼의 '오 나여! 오 삶이여!'다.

"수없이 던지는 질문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 꼬리를 물고
어리석은 이들로 가득한 도시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찾을까오 나여? 오 삶이여
대답은 한 가지,
네가 바로 여기에 있고
삶이 존재하고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휘트먼 '오 나여! 오 삶이여!' 부분
키딩은 이 구절을 읊으면서 학생들에게 삶의 이유와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왜 꿈을 꾸어야 하는지? 인간은 왜 자기 삶의 주인이어야 하는지? 왜 인간은 사랑을 하고 아무리 바빠도 하늘을 올려다봐야 하는지? 왜 당장 이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 것들을 읽고 써야 하는지?답은 분명하다. 인간의 삶은 하나하나 모두 가치 있는 '한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 예찬론자였다. 잡스는 종종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양과 인문학의 결합된 기술이야말로 가슴 벅찬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부러웠다. 첨단기술을 사용해서 만든 통신기기를 광고하는 데까지 시구절을 들이대는 게 한편 어색했지만, 또 한편으로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시인의 시구절을 자신들의 기술적 우위를 자랑하는 데 활용하는 사람들, 그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자긍심이 부러웠다. 사실 미국에서 첨단 IT 기업의 CEO들이 고전을 인용한 사례는 많다.

스티브 잡스의 대를 이어 애플의 CEO가 된 팀 쿡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1년 한 인터뷰에서 경쟁사들의 제품들을 겨냥해 "아이패드 외의 태블릿은 해괴하다(bizarre)"며 그것들은 "가벼운 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밀턴의 실낙원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꺼내온 것이다.

밀턴의 '실낙원' 에 등장하는 구절은 이렇다.

"허무한 모든 것과 허무 위에다 영광이나 명예, 혹은 어리석은 희망을 쌓아 올리는 자들이 가벼운 증기처럼 떠오른다."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것은 사실 총체적 결과다. 인문학은 오로지 인문학적인 결과만 만들고, 기술은 오로지 기술적인 성취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서 훈민정음과 측우기는 따로 나오지 않는다. 측우기를 만들 수 있는 천재들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는 천재들이 측우기를 만드는 것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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